스폰지 하우스 광화문

 

 

 

오래간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오구리 슌. 이름은 못 외웠어도 얼굴은 알고 있는 유명한 배우, 야쿠쇼 코지. 트위터의 짧은 리뷰만으로도 그냥, 딱 내가 좋아하는 일본 영화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이상한 포인트로 꽂혀서 혼자 울다가(절대 눈물이 나올만한 영화가 아니다) 웃다가. 결국

엄청나게 좋았다.

 

첫 장면, 그 대비부터 좋았다.

 

벌목꾼인 카츠(야쿠쇼 코지)는 전기톱으로 나무를 베다가 영화 촬영 중이니 잠시만 작업을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전기톱을 사용할 수 없어 가지치기를 하기 위해 높은 나무 위로 오르는 그. 그가 올라간 높은 나무 위에서는 저 멀리 마을 촬영 현장이 보이고, 요란하고 시끄러운 전기톱 소리가 그쳐 적막이 도는 가운데... 곧 촬영을 시작하니 조용히 해달라는 외침이 들린다.

 

전기톱의 소음에서 영화 촬영하기 직전의 그 고요.

 

그렇게 영화 촬영팀과 첫 만남을 한 카츠는 이후에 우연히 사고가 난 그들의 차를 발견. 영화 감독인 코이치(오구리 슌)과 스태프를 태워주면서 인연을 맺게 된다. 헌팅도 따라다니고, 엑스트라로 출연하기까지

 

스물 다섯살로 영화 감독인 코이치는 모든 것에 영 자신이 없다. 무엇 하나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 나가지도 못하고 주위에 휘둘리며 자신의 작품마저도 민망하기만 할 뿐이다. 온갖 징크스를 만들어서 무사히 영화가 끝나기를 바라는 그.

 

처음에는 솔직히 카츠에게 심하게 빙의했었다. 우연히 엑스트라로 참여를 하게 된 카츠가 동료들에게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찍은 필름 상영회를 다녀온 후 목욕탕에서 혼자서 연기를 할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렇게 창조된 세계 안에 한번이라도 발을 담갔던 사람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법이지.’

 

영화나 드라마 등 카메라 앞이나 무대 위에 서봤던 사람은 그 장소와 그 시간에 중독되고 마는 것 같다. 프로이건 아마추어이건 상관 없이카메라나 무대는 또 다른 세계이며, 그 속에 서 있는 자신은 현실과는 다른 또 다른 나이므로.

 

그래서 벌목꾼이었던 그가 영화 현장에 매력을 갖게 되고 그곳에서 막내를 자처하여 촬영을 도울 때, 우리 모두 그럴 수 있으므로. 한 번쯤 그렇게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동경하므로. 그가 절절히 이해가 갔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소심하기 그지 없는 코이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말도 없고, 어버버한 캐릭터에 별로 눈에 띄지 않았는데자신이 촬영한 필름을 보고는 도쿄로 도망가려고 하는 그. 우연히 그를 역까지 태워다 주는 카츠의 요청에 못 이겨 영화의 줄거리를 말해주게 된다. 몇 번이고 진짜 재미있냐고 물어보는 코이치.

 

결국 코이치는 자기 작품을 재밌다고 인정해주는 카츠로 인해 변해가기 시작한다. (물론 도쿄로 가기 직전에 스태프에게 붙잡혔기 때문이지만) 자기 작품에 확신이 없던 코이치를 보면서, 나는 또 가슴이 아파왔다. 그리고 궁금했다. 그런 코이치가 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코이치는 변한다. 자신의 작품을 보며 웃고 울던 단 한 사람으로 인해.

 

그렇다.

우리는 한 사람이면, 변할 수 있는 것일까.

코이치는 (내 생각에)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자기 작품에 확신을 갖지 못했고, 촬영팀을 이끌지 못했었다.

나는? 나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다.

내게도 나를 알아봐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변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결국그런 사람이 있어도, 나는 그 사람조차 믿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니까 패스를 하고.

 

코이치가 변하자 스태프도 변하기 시작한다.

그저 대충 때우려던 스태프들이 코이치가 의욕을 가지자, 조금더 나은 작품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노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마을 사람들을 배우로 동원한 카츠의 능력이 있었지만.

 

카츠가 마을 사람들을 대동하는 장면은 꼭 미셸공드리의 <비카인드 리와인드>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유쾌하고 즐거웠다.

두 사람의 나름의 위기를 극복하고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크랭크업 장면은 솔직히 너무 작위적이고 교훈적이며 따뜻한 느낌이 있어서살짝 아쉬웠지만

전체가 좋으니까 그정도는 OK이다.

 

60살인 나무와 25살인 나무.

카츠와 코이치.

 

두 사람의 이야기도 좋았지만카츠와 그 아들의 이야기도 좋았다.

역시 일본스러운 부자 관계다.

막 패고 대들다가도 진짜 세게 맞자 걱정하고집어 던진 거 아무렇지 않게 주워오고.

 

나무만 찍어대던 딱따구리는 비가 오자,

다른 세계에 잠시 내려 앉아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나 다시 나무를 찍어야하지만

딱따구리를 만났던 누군가에게 변화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내리는 비는 곧 멈출 거라는 믿음을….

딱따구리가 준 것이다.

 

민망하다며 감독 의자에 조차 앉지 못했던 코이치에게 카츠가 직접 만들어준 나무 의자.

바닷가에 놓여 있는 그 의자를 배경으로 한 엔딩컷은 정말 예뻤던 것 같다.

 

이 영화는 결국, 사람만이 사람을 변화 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영화라는 것이 사람을 꿈꾸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결국은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비는 곧 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속삭여 보았다.

코이치의 대본 마지막장에 쓰여있던 자신이라는 단어처럼

‘自分らしく 지분라시쿠

‘自分らしく 지분라시쿠

‘自分らしく 지분라시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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