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2 / 예술마당 2

 

 

 

내게는 아주 아주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애증의 작품이 된 <키사라기 미키짱>. 물론 보다는 가 훨씬 크지만. 작년에도 3번이나 본 작품이다. 올해 다시 올라온다는 사실은 진작 알고 있었고, 손꼽아 기다린 것까지는 아니지만 오픈한다는 소식에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프리뷰 기간을 놓치지 말자며 예매를 했는데, 지인으로부터 주말에 초대 티켓이 나왔다. 물론 주말에 지방에 내려갈 일이 있어서 초대에 응하지는 못했지만 괜시리 아쉬운 이 마음은 무엇일까. 예매를 해놓은 게 아쉬운 게 아니라, 한번 더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 무자게 아....

 

며칠의 프리뷰 기간 중 내가 금요일 공연을 선택한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정상훈배우님이었다. 작년 캐스팅이 김남진 배우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마음 한 구석에서는 캐스팅이 많이 안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한 세 분 정도를 빼놓고는 모두 바뀐 것. 살짝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발견한 정상훈 배우님의 이름 석자! 그래, 정상훈 배우님이 나온다면 그깟 섭섭함 따위 훌훌 털어버리자 마음 먹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정상훈 배우님을 처음 본 것은 아마도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듯한 창작뮤지컬 <점점>에서였다. 대중에게 조금은 외면당한 작품이었는데, 나는 꽤 재재미있게 봤었다. 특히나 그 작품에서 능청스럽게 코미디 연기를 하는 정상훈 배우님께 반해버리고 말았다. 정성화 배우랑 친하다는 인터뷰를 본적이 있는데, 코미디언에서 시작해 연기자를 거쳐, 무대 위에서 반짝 반짝 빛나는 배우가 되고 싶다며 스스로 쓰고 있는 작품도 있다고 말한 것이 인상 깊었다. 후에 <올슉업>애서도 꽤 멋졌고, <폴링 포 이브>라는 작품도 정상훈 배우 때문에 보았는데, 사실 그 작품에 대해서는 그닥….. 말은 없….없다.

 

무튼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정상훈 배우가, 내가 좋아하는 연극에 출연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기쁘던지. 무대는 작년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더 극장이 작아진 듯한 느낌. 공연 시작 전에는 빔 프로젝터에서는 <키사라기 미키짱>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과 홍보 영상, 광고들이 나오고 있었다. CJ E&M이 상업적으로 머리를 참 잘 쓴다는 그런 엉뚱한 생각도 한번! 공연 시작 전 공연 관람 예절에 대한 영상도 나왔는데, 이에모토 역을 맡은 이율 배우와 정상훈 배우가 함께 등장해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여기에서부터 정상훈 배우님은 어찌나 능청스러우시던지. 정말주의 영상 만으로도 완전 관객들을 포복절도의 현장으로 이끄셨다.

 

영화로도 몇 번을 봤고, 연극으로도 3번이나 본 작품인데도 볼 때마다 기대가 되고 설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인 건지. 이번에 홍보 카피로 의심극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던데, 꽤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자살로 죽은 키사라기 미키짱의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팬들.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의혹이 제시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사이에 드러나는 키사라기 미키짱과의 관계들. 미스터리와 추리를 적절히 가미한 시추에이션 코미디.

 

시즌2로 돌아온 <키사라기 미키짱>은 작년보다 훨훨훨훨훨훨훨씬 웃겼다. 진짜 웃기려고 작정하고 만든 것 같다. 정말 쉴새 없이 웃었다. 그런데, 솔직히! 워낙 좋아하는 연극이니 좋은 말만 쓰고 싶은데, 너무 심하게웃겼다. 작년에도 리뷰에 그런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조금만 눌러주면 좋을 것 같다고. 그때는 야스오의 화장실 개그 때문에 그런 말을 했었는데이번에는 전체적으로 다 웃긴다. 상황이 다 코미디고, 캐릭터가 다 개그맨이다. 특히나 스네이크 역할을 맡은, 내가 위에서 좋아 죽겠다고 한 정상훈 배우님. 진짜 개그의 최고봉을 찍으셨다. 등장하면서부터 슬랩스틱 개그를 작렬해주신다.… 웃기긴 너무 웃긴데…… 이 뭐라 표현하기 힘든 이 마음은 무엇일까. 너무 웃기다 보니까 다른 배우들의 진지한 부분이 조금 죽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작년 캐스팅의 경우에는 연기를 못한다고 느낀 배우가 없다. (김남진 제외) 합도 좋고 개개인의 기량도 굉장히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배우들의 연기를 또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고. 이번에도 합은 무자게 좋고, 연기도 나쁘지는 않은데 배우들의 임팩트가 약간 적은 것 같다. 그래서 각자가 확 주목돼야 할 부분들이 사라져버린 느낌이랄까. 나는 이 연극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배우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배우 모두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주목 받을 수 있는 장면이 하나씩은 있다. 그런데, 계속 웃기기만 하다 보니까 그게 사라진 것만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 감동이 쫙~~~ 밀려와야 하는데…. 그것도 적은 것 같고.

 

이에모토 역을 맡은 이율 배우님은 소극장 뮤지컬에서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뮤지컬 배우라서 그런지 역시나 발성은 참 좋으셨다. 그리고 연기도 좋았고. 무엇보다 바람직한 기럭지를 가지고 계시니까. 그리고 기무라 타쿠야 역을 맡은 윤상호 님은 지금 리뷰를 쓰려다작년 캐스팅에서 야스오 역할을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매칭이 잘 안 되었는데점점 생각이 난다. 역시 배우는 캐릭터에 따라 천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보다. 연극이 시작되고, 10분도 안 돼서 배우들은 땀 범벅이 된다. 저렇게 에너지를 소진하다 이 공연을 마지막 날까지 무사히 끌고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느낌이다. 땀들이 뚝뚝 떨어지는데. (그래서 더욱 눌러주는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개인적인 아쉬움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까지 웃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른다. 커튼콜 때, 정상훈 배우님이 마이크를 잡고 인터파크 예매 1위 해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심하게 공감하며, - 이 연극 인터파크 예매 1위 만들어 드리고 싶다!!! 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배우들 인터뷰 영상을 보다 보면, 농담삼아 여배우가 없어서 아쉽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남자 배우들만 나오기 때문인지, 정말 객석의 대부분이 여성 관객이었다. 원래도 공연이 여성 관객의 비율의 높기는 하지만 <키사라기 미키짱>은 정말 압도적이었던 듯. 인터파크 예매 1위와 남성 관객들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그런 <키사라기 미키짱>이 되었으면 좋겠다. 유쾌한 연극이 보고 싶을 때, 정말 생각 없이 미칠 듯이 웃고 싶을 때, 그러면서도 눈물이 주룩주룩은 아니지만 코끝 찡한 감동을 얻고 싶다면, 배우들의 땀이 뚝뚝 떨어지는 열정을 마주하고 싶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공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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