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25 / 세실극장

 

 

 

지난 3월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할 때부터 보고 싶은 연극이었다. 아마도 윤주상 배우님의 얼굴이 크게 박혀 있는 포스터 때문이었을 것이다. 포스터에서 살짝 코미디의 느낌도 나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시 저렴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을 구하다 결국 놓쳐버리고 말았는데, 세실극장에서 재공연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 저렴한 평일 낮 공연으로 예매를 완료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솔직히 살짜쿵 귀찮은 마음도 생겼다. ...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 꾸역꾸역 준비를 해서 공연장으로 향했다. 비가 너무나 많이 내려서, 사실 관객이 별로 없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에 급하게 예매를 했는데, 당시에도 꽤 예매 가능 좌석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청 근처에 위치한 세실극장은 처음 가보는 공연장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살짝 별로였다. 너무 구식이었는데, 그게 고풍스럽거나 예스러운 느낌이 아니라 조금 촌스러운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내 우려와는 달리 공연장은 관객으로 북적이고 있었는데, 학생 단체가 왔던 까닭이었다. 정말 나도 중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이들의 수다가 어찌나 거슬리던지. 죽는 줄 알았다. 로비도 좁아서 그 안에 있자니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낮 공연이다 보니 학생 외에는 대부분 중장년층 관객들. 그 사이에서 홀로 덩그러니 서 있다가 객석을 오픈하자마자 서둘러 들어갔다. 객석에서도 그 부산스러움은 끊이질 않아서 아이들의 수다와 플래시를 켜고 사진을 찍어대는 수녀님 및 어르신 때문에 멘붕이 오기 직전이었다. 러닝타임이 길 것 같다며 투덜거리거나 끊임없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과연 연극이 시작하고 나서 그들이 공연에 집중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우려와 달리, 그날의 관객 분위기는 대박!!! 아마도 공연이 재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호응이 너무 좋아서 무대 위 배우들도 조금씩 업이 된 느낌이었다. 게다가 중년의 아주머니들도 공연을 보는 내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옆 사람의 허벅지를 쳐가며 웃어대는데, 그 모습에 왜 내가 뿌듯한 것인지. (참 이상한 성격이지만 내가 보는 공연을 다른 관객들도 함께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좋아진다) 포스터에 박혀있는 홍보 문구 꽉 막힌 회장님과 까칠한 소설가. 그들이 만들어가는 귀기울이기프로젝트!”처럼 이 연극은 보청기 회사 회장님과 그의 자서전을 써주는 소설가가 만나 작업을 하면서 서로의 내면에 갖고 있던 어둠과 마주하고, 결국 그 상처와 아픔을 위로 받는다는 내용이다.

 

우선! 나는 윤주상 배우님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좋다. 리얼하게 말하자면 그 분의 목소리 때문에 먹고 들어가는 것도 있지만, 그냥 하나가 좋으니 다 좋게 느껴지나 보다. 처음 윤주상 배우님을 뵙게 된 건, 연극 <웰컴 투 동막골>(2002, LG아트센터)에서. , 그곳에 나온 배우들은 거의 대부분 좋아하게 되었지만, 윤주상 배우님은 특히나 그 목소리 때문에. 나는 왜 그렇게 그런 중저음 목소리에 미치는지 모르겠다. 그 뒤로는 드라마에서만 종종 뵈었을 뿐, 무대를 보지는 못했었다. 10년 만에 보는 그 분의 연기. 게다가 소극장에서 가깝게 보니, 더더욱 멋지셨다. 중간에 이순재 님의 보험 광고를 패러디한 부분이 있었는데거기서 성대모사를 하시는데 정말 똑같았다. 웃음 대폭발! 게다가 극중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연기할 때는주루룩 떨어지는 눈물. 솔직히 그 장면이 가장 잊혀지지 않는다. 아프다고 슬프다고 힘들다고 온몸으로, 큰 목소리로 소리지르는 연기보다 담담하게 말해 내려가는 연기가 더 아프고 슬프다. 담담하게 말하는데 흐르는 눈물. , 같이 울어버리고 말았다.

 

보청기 회사를 배경으로 해서,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것에 대해서, 자신 내면의 말을 듣는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갔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소재 선택이 탁월했던 것 같다. 물론 갈등 구조 등은 어떤 드라마나 스토리에서도 볼 수 있는 평이한 느낌도 있었지만회장님의 아내에 대한 에피소드는 그래도 많이 식상하지는 않았는데, 따님과의 대화는…. 흠흠흠. 나쁘지는 않았으나 너무 과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연결이나 흐름이 조금 끊기는 느낌이랄까. 중반부까지는그래도 굉장히 좋았는데…. 후반부가 살짝 아쉬웠다. 회장님이 젊은 자신을 만나 서로를 안는 장면까지는 괜찮은데…(그 무대 배경이나 음악, 에코 등은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조금은 촌스러웠다) 작가의 비밀이 드러나는 부분은 조금 소프트하게 표현해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적으로 흐르던 연극 무대가 갑자기 실험극이 된 듯한 기분이었으니까.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좋았던 연극이라 약간의 아쉬움이 더 크게 남았다.   

 

그래도 중년의 관객도, 청소년 관객도 함께 웃고 즐길 수 있었던 연극. 젊은 배우들이 주연을 하는 게 아니라 나이가 많은 배우의 열연이 돋보였던 연극. 개인적으로는 윤주상 님의 연기를 볼 수 있어 의미 있었던 연극. 그런 연극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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