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4. 04. / 상암 CGV

 

 

 

 

얼마 전 친구가 <그녀가 떠날 때> 시사회 표가 생겼다고 함께 보러 가자고 했다. 어떤 영화인가 살짝 정보를 찾아 보았다. 내 스타일인 듯 했지만 시간이 되지 않아 아쉽게 거절을 하고 말았다. 그 뒤로 몇 번을 볼까 말까 고민했는데, 솔직히 미친 듯이 당기지가 않았다. 내 스타일이고 해놓고 당기지 않는다니, 모순일 수밖에 없지만 깨나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고 우울할 것만 같아서 쉽게 손이 가지 않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봐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영화. <그녀가 떠날 때>는 내게 그런 영화였다. 그러던 중 다른 친구가 그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고, 함께라면 조금은 쉽지 않을까 하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는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우마이가 낙태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우마이는 아들을 데리고 독일에 있는 친정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부모님도 오빠도 이혼을 원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관습이라는 건 그런 거니까.

 

나는 솔직히 처음에는 친정을 찾아간 우마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싶다면 스스로 방법을 구해야 한다며, 친정에 머물려 하는 것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 그들에게 이해를 구걸해야 하는지, 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냐며 가족에게 화를 내는지이해할 수 없다고 여겼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을 이해시키려 하기 보다는 그저 그곳을 나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이 올바르다 여겼다.

 

나는 가족을 믿지 않는다.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나름 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자부하는 나이지만…. 이상하게 나는 가족주의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도 싫고,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도 싶고, 희생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싫다. 그런 내가 우마이를 보고 있으니 답답한 생각을 들 수밖에.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모두가 욕을 해도 나를 이해해줄 단 하나의 집단, 가족. 결국 가족한테만큼은 이해 받고 싶고, 위로 받고 싶고, 상처를 어루만짐 당하고 싶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얻고 싶은 거였을 거라고. 나 역시 가족주의가 싫다 말해도 결국 힘이 들거나 지칠 때, 돌아가는 곳은 부모님의 품이니까.

 

그리고 우마이가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도 별로였다. 형제에게 맞고 나서, 또 찾아가는 곳이 사랑하는 남자의 집이다.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왜 또 다른 남자에게 위로 받고 의지를 해야 하는가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 영원히 남자를 적대시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너무 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것도 가족과 마찬가지로 좀더 영화를 보니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단지 남자에 의존을 하는 문제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데 적당한 시간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니까. 누군가의 엄마이기 때문에, 이혼을 했기 때문에 사랑에 겁내 하고, 좀더 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더욱 보수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그렇게 이 영화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토를 달게 만들었으나 결국은 나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삶을 응원하고 싶었다. 이혼한 딸 때문에 직장 내에서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견뎌야 하는 아버지와 파혼을 당한 여동생. 그런 여동생의 결혼을 돈으로 성사시키는 아버지. 그 결혼식 장에 가서 내쳐지고, 왜 자신은 이모의 결혼을 축하해줄 수 없냐는 아들의 말에 다시 그곳을 찾아가 울부짖으며 이야기 하는 우마이.

 

그녀의 행동에 같이 울었다. 그녀가 맞을 때 내가 맞는 것처럼 아팠다. 불편할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결국 오래된 관습을 선택한 아버지와 두 아들. 과연 그들일 지키려고 했던 명예라는 게 무엇이길래. 누구도 원치 않았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나를 절규하게 만들었다.

 

목구멍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버지건, 오빠건, 동생이건, 전 남편이건, 심지어 사랑에 빠진 남자라도 상관 없었다.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알고 있다. 이건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명예 살인이라는 관습을 가지고 있는 한 사회의 관습과 또한 커뮤니티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영화라는 것. 하지만 그 안에서 언제나 약자는 여성일 수밖에 없다는 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창 밖을 바라보며 사내로 태어났어야 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녀가 사내였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었을 테니까.

 

그녀와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그래서 결국은 아버지의 결정에 반대를 했던 남동생만 해도 그랬다. 나는 그 남동생이 결국 방아쇠를 잡아 당기지 않았지만 결국은 그 사회 안에서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 될 거라는 게 겁이 났다. 사회와 관습은 그렇게 유지가 되는 거니까. 폭력적인 아버지를 보면서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는 사람이 아버지를 담는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변화해야 하며, 아주 작은 것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내게 그런 관심을 촉구하게 만들었다. 그런 관심이 있는 나라들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게 어떤 나라였는지 조차 모른 채 무지했던 내게. 무심함 속에 절망하고 분노하는 법을 잃어가고 있던 내게 그 감정들을 일깨워줬으니.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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