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4 / 남산예술센터




한동안 블로그를 방치해두었다.
간간히 공연도 보고,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그랬는데 이상하게 글이 써지지 않았다.
글로 남기고 싶을 정도로, 누구에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작품을 만나지 못한 까닭도 있지만...
그저 나는 나를 잃고 살았던 것 같다.

몇 번이나 써내려가다 채 완성하지 못하고 멈춰버린 수많은 리뷰들과 나의 일기들.
완성은 될 수 있을까.

뭐, 서론이 길어졌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시 한 번 기록해보고자 한다. 내가 살아가는 흔적을.
그래야 살아있음을 느낄 테니까.
짧아도 좋으니 남기고 싶다.
내가 무언가를 봤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도록.

결국 계속 서론이 길어지고 있는데, 오늘 공연 2편을 보았다. 우선 남산예술센터에서 한 <878 미터의 봄>. 저렴한 가격을 위해(이 놈의 돈! 돈! 돈!) 조기 예매을 해놨었다. 사실 일정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안에 보는 게 아니면 잘 예매를 하지 않는다.

역시나 갑자기 회사 일이 잡혔고, 사실 취소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꽤나 고민했다. 일이 몇 시에 끝날지 몰라서. 그런데 취소 수수료도 너무 아깝고, 일단 한 번 밀어 부치자고 (아!! 맞춤법 헷갈려ㅠ) 생각했다. 다행히 일은 일찍 끝나서 남산예술센터로 고! 고! 이 놈의 날씨 날씨 날씨! 정말 남산예술센터까지 가는데 얼어 죽는 줄 알았다. 무슨 춘삼월에 그따구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건지. 무튼 그렇게 나름 우여곡절 끝에 공연장에 도착했다.

요즘 공연을 고르는 기준. 예매 사이트에 가서 포스터를 훑는다. 제목과 포스터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공연을 찍는다. 공연장과 제작진, 출연자 등을 본다. <878 미터의 봄>. 일단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공연장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조금 웃긴 얘기긴 하지만 나는 무슨 수상작, 이런 거에 좀 반응하는 편이다. 맹신하지는 않지만 조금 더 호기심이 가는 것은 사실! 벽산희곡상 당선작이라는 것이 심하게 땡기기는 했다. (예전에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되었던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 <푸르른 날에>를 재밌게 봤던 것도 이 공연 선택에 약간의 이유를 제공했다. 사실 큰 연관성은 없지만.)

나는 사회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공연을 좋아했다. (과거형인 것은 최근에는 딱히 취향이란 게 없어졌다. 공연에 대한 선호도가 아주 중구난방이다) 예술(공연)이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고, 인간의 삶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여겼었다(한 때). 그러니 카지노로 변한 폐광촌. 막장 인생을 사는 사람들. 그리고 타워크레인 위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 그들의 이야기가 시공간을 초월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펼쳐진다는 것이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조기 예매는 가격도 참 좋지만, 자리도 참 좋더라.(라는 또 쓸데없는 한 마디를 곁들이며) 일단 무대는 참 좋았다. 거울을 적절히 활용한 것도. 무대 전환 때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공연을 다 보고 난 후...

솔직히 뭐라고 표현을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의미는 있었다. 충분히. 작가의 의도도, 연출가의 의도도 알겠다. 그런데.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지, 가슴이 울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공연 직후 트위터에 "연극 <878 미터의 봄>. 의미는 좋은데, 무대도 좋은데.... 이 아쉬운 마음은 뭐지? 뭔가가 살짝 불만족스럽다."라고 올렸다.

생각해보니 '감동'이었던 것 같다. 나는 감동을 받지 못했다. 그게 내 불만족의 이유였다. 개개인의 연기가 나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몰입이 되지 않았다. 왜 저 장면에서 화를 내는지 배우들에게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연기는 좋은데, 대사 전달은 조금 명확하게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톱니 바퀴가 아주 살짝, 정말 조금 어긋난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암전도 마찬가지이다. 무대 전환 방법이 나쁘지는 않았으나(오히려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나와서 다음 장면과 연결 시키 듯 무대를 전환하는 방법은 신선하고도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너무 잦았다. 전체적인 흐름이 끊기는 느낌. 중간 중간 독백을 하는 부분도... 뭔가 미묘하게 느낌이 안 산다. 솔직히 나 역시 답답한 게 , 대사도 좋고 연기도 좋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가 갸우뚱해지니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아마 공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너무 힘이 들어간 것 같다는... 너무 멋있게 만들려고 한 게 아니었나... 하는 그런 생각. 중간에는 살짝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라며 따라가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최종적으로 이 연극이 하고자 하는 의미는 명확하다. 우리는 878미터 아래를 혹은 타워크레인 고공을 궁금해 해야 한다는 것. 그곳을 보고(봄), 봄이 오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의미는 너무 좋은데,
감동이 따라가지 못해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드는 공연이었다.

(내 앞에 관객은 어느 부분에서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당연히 사람에 따라 보고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만, 그런 관객을 보면 내 신경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짝 고민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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