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장진 대장님을 좋아한다고 말해놓고 막상 대장님의 작품은 그리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영화 말고 연극) 돈이 없었던 건지 마음이 부족했던 건지. 분명 대장님이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인데.  

 


실제로 장진 감독님의 무대를 본 것은 2002<웰컴 투 동막골>. (처음 장진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1999 12 24 EBS ‘예술의 전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연극 허탕을 통해서) 진실과 거짓의 비율을 적절히 섞은 이벤트용 사연으로 공연 티켓을 선물로 받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공연을 보기 위해 대전에서 서울에 올라갔다. 티켓 2장을 받았지만 남자 친구가 없는 관계로, 서울로 올라가는데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친오빠와 함께. 녹음기도 아니고 공테이프를 넣은 워크맨으로 공연을 녹음을 하기도 했고(나쁜 짓입니다!), 역삼역 지하철 역에 붙어있던 포스터를 떼오기도 했다. 그 녹음 테이프는 솔직히 내 웃음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서울에 오면 정말 장진 대장님의 작품을 많이 볼 줄 알았는데. 필름있수다 건물 앞에서 죽치고 앉아 일거리를 구걸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나는 또 그렇게 다른 길을 걷고 다른 삶을 꿈꾸고. 잊고 살다 겨우 보게 된 공연이 장진 대장님의 극작품이 아닌 연출작 <세일즈맨의 죽음>이었다. 그 공연장에서 대장님을 보고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내릴 것 같이 떨렸던 그 순간들. 하지만 또 잊고 살고. 

 


이렇게 구구 절절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장진 대장님의 작품 <리턴 투 햄릿>을 보고 왔기 때문이다. 12년 차 팬이라고 말하기가 너무 무색하게 실제 무대로 본 3번 째 작품. 솔직히 장진 대장님의 작품은 어떠한 코멘트를 하는 게 힘이 든다. 내가 대학로 검정치마(극 중에 배우들의 대사에 등장하는 비평가)도 아니고. 물론 중얼중얼거리는 블로거 정도는 되겠지만, 그냥 대장의 작품은 머리로 판단하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좋았던 점, 좋지 않은 점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다. 그저 마음으로, 마음으로만 마주하고 싶다.   

 


라고, 말하고 나는 아마도 할 말은 다 할 것이다. 우선! 초반에는 너무 진지한 감이 있었다. 연극에 대해, 배우에 대해, 예술에 대해, 산업에 대해. 진지한 성찰들. 분명 코미디일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 진지함이 나쁘지는 않다. 예상 외라서 그렇지. 요즘 보는 연극들이 왜 이렇게 예술 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예술 하는 습관> <레드> <갈매기> 그리고 오늘 <리턴 투 햄릿>까지.

 



(여기까지 쓰고 한참을 또 그냥 그대로 백지 상태로 두었다. 공연을 본지 보름이 지난 후 다시 이 글을 끄적인다)

 


캐스팅 조차 모르고 갔는데, 일단 익숙한 얼굴들이 나를 기분 좋게 반겼다. 대령 님.(순간 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라고 불러야 하는지, ‘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살짝 고민했다.) 역시나 처음으로 본 건 <웰컴 투 동막골>과 이후 장진 감독님의 영화들. 약간 한재석을 닮은 듯 느끼할 수 있는 얼굴이나, 나는 그런 얼굴이 좋은 걸. 후훗. 그래서 인상 깊게 봤었다. <웰컴 투 동막골>을 보고 난 후에 사진을 오려서 다이어리에 붙여 놓기도 했었고, 장진 감독님 팬 카페에 대령 님! 너무 좋아요!”라고 썼다가 대장 님이 아니구요?” (장진 감독님의 팬 카페에서는 감님을 대장이라고 부른다) 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었다. 그렇게 내게는 인상 깊은 배우 김대령.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었다. 지금까지는. 그런데, 진짜 이번 <리턴 투 햄릿>에서는 장난이 아니었다. 역시나 시간은 허투루 흐르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모 뿐아니라 그분의 연기도 반짝 반짝 빛이 났다. 멋있었다. 그리고 배역도 좀 좋았다. 대학교 때에는 주인공이었으나 연극배우를 고수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연예인이 되어버린 친구에게 햄릿 배역을 빼앗겨야 했던 재영 . 그 친구에게 끊임없이 시비를 거는 것. 그건 비단 질투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자신이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연극을, 무대를 친구가 더 이상 최고로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 그것이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두 사람이 무대에서 검투를 하는 장면, 그리고 그 장면이 끝나고 난 후. 한 유행가 가사처럼 연극이 끝난 후나누는 대화들. 그게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키사라기 미키짱> 때문에 미칠 듯이 좋아했던 김원해 아저씨. , 역시나 멋있다. 진짜 이 분은 앞으로도 매우 매우 아주 아주 많이 많이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어린이 공연을 하고 재연 배우를 하는 연극판에서는 꽤나 짬밥을 먹은 베테랑 배우. 여배우와 결혼했으나 아내에 비해 잘 나가지 못하는 남편. 어린이 공연을 하고 분장도 지우지 못한 채 분장실로 온 그들을 일부 배우는 비난한다. 아내 생각도 하라면서, 연극 배우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라는 등. 하지만 그를 이해하는 한 사람. 무대감독. 무대 감독은 한 때 배우를 꿈꿨으나 무대 감독으로 전향을 한 인물이다. 그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또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객석에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또 생각하게 되었다.

 


13
. 침대 위에서 엄마를 마주보고 내가 연극 배우가 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거야?”라고 묻던 나를 떠올린다. 엄마는 언제나 그러하듯 단정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때 가봐야 알지.” 반대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묻는 내 마음 속에는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가난한 딴따라 따위 되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28살의 나는 객석에 앉아 있는 것이다. 연극 배우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봐야 하는 지 혼란스러워 한 채. 그렇게 그렇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잠시 감정적이어지긴 했지만 이건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 초반 30. 살짝 당황을 했다. 웃길 줄 알았던 공연은 나를 이렇게 과거 어느 순간으로 데려다 줄만큼 진지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역시나 장진감독님은 장진감독님이다. 햄릿을 마당극처럼 변환하여 극 중 극 형식으로 보여주면서 빵빵 터지기 시작하는데

 


그렇데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짚고 가야 할 부분이 또 있다. 극 중 배우들이 말한다. 햄릿 등의 고전이 연극적으로 의미가 있으면 뭐 하냐고.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는데. 연기를 하면서도 어려운 데, 관객들이 어떻게 공감을 하고 웃을 수 있겠느냐고. <산불>을 보면서 했던 고민들이 떠올랐다. <오이디푸스>를 보면서 느꼈던 환희가 떠올랐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언제나 그러하듯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어려운 공연을 의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저 예술적으로, 비평가들의 구미에 맞게 하는 것이 과연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했었다. 예술가들의 자기 만족은 아닐까. 결국 관객이 없다면 그 공연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얼마 전에 본 <오디이푸스>가 너무 좋아서 또 다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웃기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잖아. 왜 연극이라는 게, 공연이라는 게, 무대라는 게 가벼워야지, 웃음이 있어야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대중은 그 공연을, 연극을 즐길 수 있어.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야 하고.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웠지만, 공연이 천편일률적인 필요는 없으니까. 이런 공연도 있어야 매력적인 게 아니겠어, 라는 생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아무튼 마당극 햄릿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햄릿을 이렇게도 풀 수 있구나, 라는 감탄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관객 참여도 꽤나 있었고. 사투리 쓰는 햄릿이라,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희극적인 부분이 너무 많기는 했지만 서양 고전을 마당극과 믹스한 것은 참신하고도 새로워서 너무나 좋았다. 물론 죽음과 탄생의 교차점이라는 마지막 부분이 너무 따뜻해서 조금, 아주 조금 아쉽긴 했지만(나는 왜 이렇게 너무 따듯한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지 모르겠다. 현실이라는 게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라고 생각하나 보다.) 연극이라는 것에 대해서, 배우라는 것에 대해서, 또 공연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 아주 많이 생각하게 된 작품이었다. 내가 좋아한, 비주류였던 장진 감독님이 어느새 주류가 되어 계신다. 나는 그게 가끔, 때때로 조금은 슬프다가도 아직은 내가 그 분을 좋아하고 있음이 행복해진다.


 


그냥, 내게 그 분은 꿈이었다. 그냥, .

가장 강력한 스펙은 스토리라고 말하는 그분이 좋다.

그분을 수식하는 수 많은 단어 중 이야기꾼이 가장 좋다는 그분이 나도 좋다.

정말 오랜만에 장진이라는 이름을 가슴에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어서, 행복했다.

한 번쯤은, 아니 기회가 된다면 여러 번 이 작품을 다시금 꺼내어 보고 싶다.

 


배우열전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 때문에 알게 된 배우 이엘. (영화 <황해도>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는데, 그 영화는 보지 않았기에 딱히 할 수 있는 코멘트가 없다) 그녀의 연기를 실제로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엄청 잘 한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울리는데 있어서는 무리가 없었다. 약간 어설프지만 나름 귀여웠다고 해야 할까.

 


여일(왕비)배역의 김지성.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 솔직히(나는 솔직히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단어를 붙이지 않은 모든 말들이 거짓말인 것처럼, 그 단어 붙인 말들만이 진실인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연기 스타일은 아니데, <지하 생활자들>에서 인상 깊게 본 배우였다. 참 예쁘고 참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의외로 푼수(?) 같은 캐릭터도 어울리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배우는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무대 감독 역의 배우.(‘김슬기였던 것 같은데 확신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또 솔직히!) 연기가 가장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칼을 뒤집어 쓰고 나와서 구성지게 사투리를 구사할 때는 왜 저 사람이 저 무대에 서 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살짝, 아주 살짝 그녀가 부러워졌다.

 


마지막으로 마당극에서 변사(?) 역할을 했던 배우.(이 배우도 이름에 대한 확신이 없다) 참 구성지게 연기 잘 하시더라. 아주 매우, 인상 깊었다. 이지용 배우님과 박준서 배우님은 별 다른 코멘트는 하지 않으리. 그저 이지용 님은 <퀴즈왕> 생각이 많이 났고, 박준서 님은 <아는 여자>. 웃기는 거지만 보는 내내 제가 도둑이라서 잘은 몰라요. 그래도 사랑하면 그냥 사랑 아닙니까. 무슨 사랑 저런 사랑 그런 게 어딨습니까. 그냥 사랑 아닙니까. 제가 도둑이라서 잘은 몰라요”(정확하지는 않음)라는 대사가 내내 떠올랐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