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스킵을 하지 않고 <안테나>를 다 봤다. 최근 다시 카세 료 홀릭인 탓도 있고, 이 영화를 처음 소장했을 때에 비해서 내가 편안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당시의 나는 꽤나 우울했는지, 이 영화를 보는 게 쉽지는 않았다.

 


당시 스킵을 해 가면서 이 영화를 봤던 느낌은, 어렸을 때 없어진 동생(마리에) 때문에 엄마는 미신 등에 기대고, 동생(유야)은 미쳤고, (유이치로, 카세 료)는 자해와 SM에 빠지고. 이런 콩가루 집안? 이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한 장면 한 장면, 대사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다시 보니, 꽤나 슬픈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실이 가져오는 고통이 얼마나 큰 지. 아마 그 아픔과 고통의 깊이를 상실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거라고. 갑자기 딸이, 동생이 사라졌다. 임신 상태인 엄마는 어린 유이치로를 다그친다. 왜 옆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냐고. 유이치로는 동생이 사라진 날 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게다가 집안에서 함께 숙식하던 삼촌의 자살 장면까지도 목격을 하니, 어린 아이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었을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16살 때부터 유이치로는 자해를 하기 시작한다. 집안이 너무 조용해서. 그걸 견딜 수가 없어서. 그리고 엄마는 마리에가 사라진 해에 태어난 아들 유야를 마리에와 동일시 한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유야는 안테나가 흔들리고 있다는 말과 마리에게 돌아온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아마도 마리에가 돌아온다는 것은 유이치로의 기억 속에서 마리에가 복원되고 있다는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안테나는 (미신 같지만) 촉이나 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파장. (교감과 교류라고 하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철학이라곤 해도 제가 연구하는 건, 인간의 육체적인 측면을 근거로뭐랄까그러니까 인간의 고통에 직접 맞딱뜨려서 거기서부터 고통이라는 것을 고찰하고, 그런 고찰을 통해서 내면의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뭐 그런 것인데요. 이해가 되시나요?”

 


유이치로가 SM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여성을 찾아가서 했던 말들이다. 하지만 그녀를 찾아간 게 비단 연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학대(?)를 당하며, 고통을 겪으며 유이치로는 잊어버렸던 옛 기억들을 되찾게 된다. 꼭 성적인 부분이 들어가야만 했는지 거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모든 기억을 되살린 유이치로가 꿈 속에서 마리에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장면은 꽤나 가슴이 아팠다.

 


솔직히 100%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영화였지만, 나쁘지 않았다.(카세 료의 영향이 크리라) 얼마 전에 봤던 영화 <평범한 나날들>이 많이 생각났다. 그 당시에는 상실의 고통이 왜 폭력과 성적으로 변태스러운 것들로 표출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 놓고, <안테나>의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하는 내가 있어서 참 아이러니했다.

 



P.s
카세 료는 정말 멋있는 것 같다. 그의 연기도 그렇고. 앙상한 그의 몸이 너무 좋다.(, 나야 말로 너무 변태적인가.) 정말 욕조에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리가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