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굉장히 좋아하는 연극 <인디아 블로그>. 친구가 말하기 전에도 예매 사이트에서 꽤나 눈에 띄는 연극이었다. 일단 인도라는 곳에 어느 정도의 관심과 흥미가 있으니까. 하지만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친구의 반복되는 추천에 오늘 드디어! <인디아 블로그>를 보러 갔다.

 

인도.

중학교 때, ‘뽀미라 불리는 선생님이 있었다. 나쁜 말이긴 한데, ‘뽀글뽀글 미친X’의 줄임말이었다. , 근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그 선생님이 방학이면 인도에 다녀오셔서, 그 이야기를 해주셨다. 인도는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곳인데, 선생님은 그곳에 가면 정말 삶이 치유가 되고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단지 열흘, 보름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 아파트를 구해 한 두 달 생활을 하고 오셨다. 좋아하는 선생님은 아니었는데도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이상하게도 나도 인도를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언젠가는 한 번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된 인도.

그리고 20대 초반, 부천국제영화제에서 봤던 인도 영화 <하리옴>. 프랑스 여자가 인도 택시 기사 남자와 함께 다니며 사랑에 빠진다는, 인도 남자 배우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 몰입하기가 어려웠던, 하지만 그 인도 곳곳의 풍경과 그 배경 음악에 반해버린 그런 영화였다. 로드 무비 같은 그 영화를 보며 또 한 번 나는 인도를 꿈꿨다.

 


그 이후로도 인도 여행을 갔다가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하신 분의 이야기, <슬럼독 밀리언네어><세 얼간이> <김종욱 찾기> 등의 영화로 인도를 느꼈다. 그런 내가, 인도를 다룬 연극 <인디아 블로그>를 보게 되다니. 순수하게 인도를 여행한 두 남자의 이야기. 그러니 일단 먹고 들어갈 수밖에.

 


서문이 길었지만, 하고픈 말은 어쨌든 기대가 되는 연극이었다는 거다. 공연장에서 그곳이 자신의 집인 듯 익숙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역시나 이 공연을 여러 번 본 포스가 느껴진다.) 친구가 일단 문 앞에서 나눠주는 인도 전통차 짜이를 마시라고 했다. 두 남자가 인도 차 짜이를 내게 건넸다. 근데, 웃긴 건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들이 배우인 줄 몰랐다. 내가 생각하는 배우들은 암전 후 조명이 짜잔 하고 켜지면 등장하는 게 관례인데, 로비에서부터 관객을 맞이하는 배우들이라. 신선했다. 객석이 오픈 되고 나서도 배우가 무대를 어슬렁거리며 객석에 계속을 말을 건넸다.

 


커플이세요?”

자녀분과 어머님이세요?”

이거 들고 있다가 이따가 좀 해주세요

 


등등등.

도대체 관객을 얼마나 활용하려고 이런 사전 조사를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친구는 키스 타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흘렸다. 그리고 친구가 나를 앉힌 자리에서도 뭔가의 이벤트가 펼쳐진다고 했다. 가방까지 내려 놓으라면서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데,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닥칠지 궁금하기도 했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설마 춤을 추라는 건 아니겠지, 하면서 친구에게 엄포를 놓았다. 이상한 거 시키는 자리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공연은 시작되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게 개인적인 이야기(라 여겨지는 것들)로 시작된다. 동물원을 좋아하는 이야기. “군자에 있는 어린이 대공원을 가봤냐고. 자신이 군자에 산다고. (, 나도 얼마 전까지 군자에 살았는데, 그 어린이 대공원을 못 가봤네.) 그리고 과천에 동물원도 좋아한다고.(, 나 내일 거기 동물원 가는데.) 코리끼 열차 타고 중간에 리프트 타고 올라가면 호랑이 나오고, 그 밑에는 블라 블라 블라. (, 나도 내일 저 코스로 움직여야겠다.)”

 


사실 별거 아닌데, 내가 내일 가려고 하는 곳이 배우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이 왠지 같은 정서(?)를 갖은 것마냥 기분 좋았다. 연극의 내용은 대충 그러하다. 사랑을 잊어버린 남자, 찬영과 사랑하는 여자가 인도로 떠났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찾아 떠나는 한 남자, 혁진의 여행기로 그려진다. 혁진의 그녀가 바로 성은인데, 그 이야기를 하면서 혁진이 갑자기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내가 앉은 그 자리가 바로 성은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였던 것. 공연 중간 중간 끊임없이 혁진은 성은의 눈을 보며, 성은에게 말을 건다.

 


처음에는 친구가 말한 이벤트 석이라는 게 이런 걸지는 생각도 못했기에 너무나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어젯밤 꿈이 생각이 나면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사실 어젯밤에 꿈을 꿨다. 꿈 속에서 난 어떤 연극을 보러 갔다. 두 번째로 관람을 하는 연극이었는데, 배우랑 미칠 듯한 아이 컨텍을 하는 중이었는데(나는 배우랑 눈싸움을 할 때 져서는 안 된다는 그런 강박관념이 살짝 있다) 갑자기 나를 향해 윙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게 뭔 상황인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처음으로 공연을 보고 난 후 블로그에 그 리뷰를 올렸는데(꿈 이야기이다!) 그 리뷰를 읽고 내 얼굴을 기억해낸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공연을 보러 가니, 리뷰를 잘 읽었다는 표시로 알은체를 한 것이다.

 


사실 꿈 속의 그곳은 내가 현실에서 얼마 전에 입사 지원을 했다 서류 통과 조차 하지 못한 곳의 연극이었다. 근데 꿈 속에서 그들이 다시 내게 일을 해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현실 속에서 1차에 나를 떨어트린 이들이 꿈속에서 다시 내게 함께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침에 그 꿈이 생각났을 때 너무나 심난했다. 떨어졌을 때, 괜찮은 줄 알았다. 그리고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꿈속에서 나는 다시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쩌면 안 괜찮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모르는 척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무의식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하루 온종일 심난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들이 날 성은이로 연극에 참여시켰다. 나는 온전한 관객이 아니었다. 그들에 의해서 나는 어쨌든 그 연극을 만들어가는 일부가 되었다. 나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 내가 진짜로 원하고,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연극을 보는 내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배우들의 땀과 열정은 언제나 나를 전율하게 만든다. 내 눈을 보고 말하는 연극 속 혁진도 좋았지만 배우 역시 좋았다. 이 연극 <인디아 블로그> 참 좋더라.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나 많다. 어디에 포인트를 맞출 지는 관객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여행이라는 것이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사랑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사랑에는 조금은 무심하지만 여행에 관심이 많은 나. 그런 나에게 연극은 지금 떠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 사랑에 무심하다 했지만 나도 여자인지라 사랑 이야기도 꽤나 가슴이 아프게 다가왔다.

 


특히나 사랑을 잊어버린 남자 찬영의 이야기. 사실 친구의 장례식 후 다시 인도를 찾았다고 했을 대 그 친구가 누구일지 대충 예상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펐던 것. 사실 연극을 보러 가는 길 버스에서 한 남자의 통화를 엿들었다. 들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들려왔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리는 전화. 수화기 넘어 사람에게 울지 말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묻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가 얼마나 사람의 심장을 아프게 하는지 뼈져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연극에서도 누군가의 죽음을 만났다. 보았다. 살아남은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정확히 뭐가 슬픈지도 모른 채 눈물을 흘렸다. “사랑이 다했다.”…. 나는 아직도 사랑을 잘 모르는 청춘이지만, 떠남을 알고 있고 외로움을 알고 있고 사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마도 이 연극이 많이 좋았나 보다.

 


아무래도 길을 나서야 겠다.

그리고 언젠가 꼭 이루고자 했던 사막에서 많은 별을 보면서, 응아를 싸겠다던(?) 다짐을 지켜야겠다.

 


길을 나섰지.

어린 왕자를 닮은 넌 혼자서 사막에 가고 싶다고 했어.

사막여우를 보고 싶다던 너의 꿈을 그땐 왜 웃었을까?

길은 사막으로 나를 안내해 줄거야.

별을 따라 가면 되겠지. 모래바람이 불어올거야.

두려움은 모래가루에 섞여 흩어지고

니 웃음소리에 내 발은 떠오를거야.

이 글 끝에 니가 있겠지.

 

오랜만이야.

 

              - <인디아 블로그> -

 

 


P.s )

주저리 주저리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냈지만 연극적으로도 너무나 좋았다.

멀티맨이 들려주는 음악과 라이브 연주.

배우들의 노래. 관객을 참여시키는 것.

2인극이지만 무대를 꽉 채우는 연출.

영상을 통해 연극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는 것.

그리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장면.

연극은 정말 매력적이다.

바다를 가져오지 않아도, 아주 작은 몸짓 하나, 표정 하나로 바다를 만든다.

그런 연극이 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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