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오늘 친구와 동물원에 가기로 했는데, 취소가 되었다. 살짝 날씨가 추워서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추운 날씨 때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만약 취소가 된다면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보고 싶은 영화는 <치코와 리타>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

 

씨네큐브에서 3시에 <치코와 리타>, 6시쯤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이 있다는 것을 보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젠장. 상영 시간 간당 간당하게 도착했더니 <치코와 리타>는 이미 매진이 된 것이다. 씨네큐브에서 매진된 영화를 보기는 처음이다. 또 다시 불타오르는 승부욕(?). 조만간 <치코와 리타>는 꼭 봐야겠다.


 

여하튼 6시까지 기다리기는 좀 싫어서, 황급히 미로스페이스의 시간표를 검색해보았다. 3 10분에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이 있는 것! 정말 빛의 속도로 씨네큐브에서 미로 스페이스로 이동. 인테리어만 보면 미로 스페이스가 더 내 스타일인데, 이상하게 같은 영화를 상영해도 나는 꼭 씨네큐브로 가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오랜만에 찾는 미로스페이스였다.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이 보고 싶었던 이유.

일단은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왠지 희망에 가득 찬 느낌이 들지 않는가.

게다가 포스터에 떡하니 박혀있는 오다기리 조의 모습도 관심을 끌기에 좋았다. 그렇게 관심을 갖고 보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라 했다.

솔직히 말하면 원래는 이 감독의 영화 중 <아무도 모른다>만 본 줄 알았었다. 근데 내가 꽤나 재미있게 본 <공기 인형> <걸어도 걸어도>도 이 분의 작품이었다는 것! , 역시나 무심하다. 무심해. 무튼 이 세 작품이 모두 그 감독의 연출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이 더욱 보고 싶었다.

 


영화는 참 예뻤다. 우리 나라에는 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영화를 아이들만의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참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해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이 느꼈다.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노인의 모습. 그리고 변해버린 가족(의 형태, 부모님의 이혼)을 바라보는 아이들.

 


부모는 헤어졌고, 형은 엄마를 따라 외갓집으로 갔고 동생은 인디 음악을 하는 아빠와 함께 산다. 형의 소원은 다시 네 식구가 모여 사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화산이 폭발해서 이사를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신칸센이 개통되고, 그 기차가 스쳐 지나갈 때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고, 그곳을 향해 간다. 수많은 기적을 기대하고 그 곳으로 향하는 형제와 그들을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변의 사람들. 정말 소소한 이야기들인데. 그 소소함이 어찌나 귀엽고 따뜻하게 느껴지던지. 다들 소원을 말할 때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한 형. 참 따뜻하더라. 그러면서도 안타까웠다. 그들의 그 기적을 위한 여행이 결국은 헤어짐을 받아들이기 위한 여행처럼 느껴져서.

 


하지만 형이 변한 게 나쁜 방향이 아니듯 모두들은 그 여행을 떠나 조금씩 변하게 되었다. 여 선생님과 결혼하는 기적을 빌겠다고 말했던 녀석이 기차가 지나갈 때 숨겨왔던 진짜 소원을 말한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진짜 소원. 그게 참 가슴 뭉클했다. 그리고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소원에서 죽은 강아지를 살려달라는 소원으로 바꾸고 그곳을 찾아간 또 다른 친구 녀석.

 


어쩜 그들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마음을 간직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달려나가는 것.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보는 것. 그래서 기억하는 것. 간직하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었을지도.

 


영화를 보는 내내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 예쁘다. , 따뜻하다. 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빠랑 같이 살고 있는 둘째 녀석의 캐릭터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음악들도 좋았고.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살며시 나에게 말해본다.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