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8 / 압구정 CGV



 

이제 내게 홍상수감독이 갖는 의미는 조금 줄어들 듯싶다. 지금까지는 잘 몰라서 알고 싶고, 궁금하고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갖고 있는 감독이었는데, 이제는 그냥 내게 유명한 감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영화관에서 본 홍상수 감독의 네 번째 영화, <북촌방향>. 내가 처음으로 본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였다. 솔직히 호불호를 표시할 수 없을 정도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뒤 <하하하>. 정말 재미있게 봤다. , 내가 이 분을 좋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옥희의 영화>. 홍상수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아쉬운 점을 주저리 주저리하고 있을 영화를 내가 홍상수라는 이름 석자만으로 좋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구나, 라고 깨달았다. 그리고 이번 <북촌방향>을 보며, 그 깨달음은 이제 확신이 되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그렇게 많이 좋아하게 되지는 못할 것 같다. <북촌방향>이 싫었다거나 나빴기 때문은 아니다. 다만, 의미는 있었으나 너무 어려웠고, 지루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지켜볼 뿐이다.’. 이상하게 그들의 삶에 내가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것 같았다.

 

반복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시간 구성조차 명확하지 않아 어디가 선이고 어디가 후인지 조차 알 수 없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사실, 말만 번지르르한 우리의 주인공 성준(유준상)을 보면서 그냥 문득 내 과거의 한 장면이 생각난 것 외에는. 성준이 배우를 하고 있는 여자를 우연히 길에서 만나서 그녀에게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예전에 3개월 가량 집 안에서 쁘띠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다가 밥을 구하기 위해 나간 거리에서 후배를 만나 일장연설을 하던 내가 생각나서 얼마나 우스워지던지.

 

우연에 대한 이야기들, 반복에 관한 이야기들. 솔직히 <북촌방향>은 너무 철학적이다. 생각하기가 싫다. 감정을 이입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야 리뷰들을 조금 읽어봤는데, 뭐랄까. 영화가 왜 그렇게 어려워야 하는 거야.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요즘 트윗에서 홍상수 봇을 보는데, 거기에서 올라온 멘션 중에 <북촌방향> 대사들이 좀 있다. 그 사실을 모르고 봤을 땐 참 좋았는데 영화 속에서 그런 흐름에서 쓰인 대사라는 걸 아니까 좀 웃겼다.

 

앞으로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기는 할 것 같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을 내가 좋아하는 감독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많은 영화를 보고, 좀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할 것 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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