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0 /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사실 기본적으로 '공포'에 대한 큰 흥미가 없다.
특히나 그 공포가 초인적인 대상인 귀신이나 뭐 이런 것일 경우에는 더욱더.
물론 심리적 공포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귀신 이야기는 안 무섭다.
차라리 피튀기고 잔인한 호러나 좀비물은...극도로 싫어하지만.
 
<우먼인블랙>의 경우 공포스릴러라는 장르에서 그나마 '스릴러'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그리고 연극에서는 '공포'를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공연 날짜가 9월까지 되어 있어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볼까 하다가
조기 예매로 50%를 하고 있길래 덜컥 예매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불행히 연극을 예매해놓은 날,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정말 나갈까 말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공연장으로 향했다.

오픈 이틀째.
왜! 왜! 왜! 왜! 왜! 왜!
50% 할인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수가 너무 적었다.
이거.... 수지타산은 맞는 건지...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들었다.

2인극이었는데, 시작과 초반부는 꽤나 재미있었다.
관객을 적절히 활용한 연출법.
흐흐흐.
나는 어쩔 수 없이 관객을 연극에 동참시키는 게 좋다.
그리고 초반 배우의 연기는, 후덜덜이었고.

아무래도 내용이 끔찍한 일을 경험했던 한 남자(아서 킵스)가 그 날의 악몽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배우를 고용하여 그날의 일들을 연극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보니,
하나의 연극이 탄생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고 해야하나?
그 전날 봤던 <예술하는 습관>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두 연극 모두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더 유사하게 느껴진 건 예전에 봤던 <39계단>이었다.
네 명의 배우가 나와 서른 가지가 넘는 배역을 소화해내는 것처럼,
이 연극 역시 두 명의 배우가,
그 중에서 아서 킵스를 맡은 배우가 다량의 역할을 소화해낸다.
심지어 '개'까지도.

그리고 연극이 가진 장점을 친히 설명해주신다.
상상만으로 모든 게 이뤄진다고.
의자 두개로 몸을 흔들 거리면 그 곳은 기차가 되고,
의자를 바꿔 앉는 것만으로도 기차를 갈아탄게 되는...
그런 연극적인 부분들이 나는 참 좋다.

그리고 어쨌든, 연극이 '상상'을 기반으로 하듯,
'상상'이 거대한 공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음향과 무대장치 만으로 만들어 내는 공포.
영상이 아니기에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또 직접 눈 앞에서 펼쳐지고, 귀로 들을 수 있는 밀폐되어 있는 공간이기에
공포는 더욱 극대화될 수 있다.

사실, 중반부는 좀 지루했다.
배우가 젊은 아서 킵스를 연기하고, 중년의 아서 킵스가 그 외 모든 배역들을 연기하며,
과거 공포의 저택에 가는 장면.
잠을 자려 하는데 이상한 소리가 나서 보면 아무 것도 없고.
중간 중간 여자 비명 소리에 일부 여성들이 놀라기는 하였으나,
솔직히, 그런 거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 나로서는 깜짝 놀라기는 하나,
그게 심리적인 공포로까지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게 막 무서워야 하는데, 그냥 놀라는 거에서 끝나버리니까.
물론, 내가 참 그런 거에 무딘 성격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후반부에 무대가 막 움직이고 그럴 때는 지루한 감은 떨어지지만,
공포감은 여전히........그냥 그 수준을 유지한다.
중반부를 좀더 빠르게 호흡하면 좋을텐데.
그리고, 뭐 극장의 문제로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무대 장치를 객석까지 확대시킨다면....
내가 너무 큰 거를 원한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어차피 공포스럽기를 원하다면,
조금더 스펙터클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스모그만 미친듯이 뿌려댄다고 분위기가 형성되는 건 아니니까.
(물론 조명 등은 매우 좋았다)
관객들은 그 분위기에 심취되기보다 자기 앞으로 몰려오는 스모그를 손사래쳐 사라지게 하는데 급급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면은 꽤나 공포스러웠다.
말 그대로,
조명과 음향과 실제 비주얼(?) 삼 박자가 고루 조화를 이뤘다고 해야할까.
그 순간만큼은, 나도 심장이 사알짝 쪼그라드는 것 같았으니까.

신선했고, 새로웠던 연극이었다.
내가 컨디션이 조금만 좋았더라면,
혹은 겁이 진짜 많은 친구와 함께 했더라면,
조금은 더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그런 연극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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