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09/명동예술극장




<키친>을 봤던 명동예술극장에서 다음 작품으로 <예술하는 습관>이 준비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술하는 습관>이라.
왠지 제목에서 너무 철학적이고 어려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재미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뭐랄까.
의미가 있을 것만 같았다. 생각하게끔 만들어줄 것만 같았다.
볼까, 말까 여러번 고민하다.
아무리 어렵고 학구적인 게 좋다해도 왠지 끌리지가 않아서 몇 번을 멈칫했다.

이렇게 고민이 될 때에는!
과감하게 관람평을 찾아본다.
사실, 정말 보고 싶다고 한번에 감이 퐉~하고 오는 작품의 경우에는
내용이나 리뷰, 평들을 절대! 절대! 절대! 보지 않고 관람을 하는데,
이렇게 망설여질 때는 관람평을 보고 결정을 하곤 한다.

예매처의 관람평에는 예상 외로 "재미있다"는 평들이 많았다.
간만에 의미 있는, 연극다운 연극을 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조금 강하게 흥미가 일기 시작했다.
물론 내 예상대로, 자신의 취향은 아니었다며, 조금은 지루했다고 말하는 관객들도 있었지만.

우선, 어쨌든 쉽게 재상연이 될 것 같지는 않고
편식하지 않고 이런 저런 연극을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일단 웃음 등에 대한 기대치를 최대한으로 낮추고 이 연극을 보기로 했다.

우선, 무대는 너무 좋았다.
세밀하고 정교하고, 사실적이라고 해야할까.
이 연극 자체가 극중극 형식을 띠고 있어, 무대는 연습실인 동시에 극중극인 <칼리반의 날>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앞에 OP석에는 무대감독과 오디오 스테프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무대 중앙에는 주인공인 피츠(오든)의 방이 만들어져 있고, 2층은 피아노가 있어 헨리(브리튼)이 있는 오디션 장소가 된다.
그리고 무대 사이드로는 작가나 대기 배우들이 앉아 있는 의자들이 있고,
내 자리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실제 배경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노가 무대 오른쪽 뒤편에 놓여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안 보였다.)
사실적이면서도 활용도도 좋았다.
극중극을 연습하거나 쉴 때에 불을 켜고 끄는 벽에 달린 스위치를 활용하기도 하고,
밤낮의 변화를 실제 커튼을 치는 것으로 연출하기도 했는데...그 묘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또 좋았던 한 가지!
BGM으로 실제 아역 배우의 노래소리가 사용된다.
그 아역 배우는 브리튼이 오디션을 보는 학생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그 노래 소리가 정말 아름다웠다.
사실............ 그러면 안 되는데 얼마 전에 본 <산불>과 약간 비교가 되었다.
<산불>에서도 장면의 전환, 암전에 그렇게 라이브를 사용했는데,
노래 부르시는 분의 고음이 너무 불안하여...(이건 그 싱어의 잘못이 아니라, 정말 노래가 너무 높았다) 흐름을 방해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노래 뿐 아니라 싱어와 피아노의 위치도 OP석이어서 더 신경 씌였던 게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술하는 습관>은 피아노는 무대 뒤에 배치하고, 노래 부르는 아이는 2층에 있었던 것도 괜찮았다.
물론, 여기서는 극중극에서 다 그 부분들이 필요한 내용으로 각자만의 고유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었다는 게 큰 차이점이겠지만.
아무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실제 노래도 너무 듣기가 좋았다.

내용은, 생각만큼 지루하지도 뭐 생각만큼 어렵지도 않았다.
그냥 조금은 담담했던 것 같다.
그러다 마지막에 울컥하기는 했지만.
울컥한 것은 별 게 아니었다.
이 <예술하는 습관>은 오롯하게 예술가를 위한 연극이며, 연극을 위한 연극이며, 예술가를 원했으나 예술가가 되지 못한 범인을 위한 연극인 듯 싶다.

뭐, 기본적으로는 
영국 출신 시인 오든과 천재 작곡가 브리튼의 가상 만남을 주제로한 극중극이 펼쳐지고...
작품의 작가가 등장하며 노배우와 미묘한 관계를 형성한다,라는 줄거리이다.
예술가들의 고민과 창작의 고통을 그린 연극.

마치 두개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우선 극중극인 <칼리반의 날들>에서는 다른 것보다 오든과 브리튼에 대해서 궁금해진다는 생각.
그 가상 만남은 두 사람의 교집합, 후에 카펜터라는 작가에 의해 전기가 씌여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극은 카펜터가 오든을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든이 카펜터를 자신이 부른 남창으로 오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실, 오든과 브리튼의 공통점 중 하나가 동성애자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연 내내 외설적인 단어들이 등장을 하면서 웃음 포인트가 되기도 하는데,
이 부분은 사전 정보 없이 갔던 내게는 조금은 충격적이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오든과 브리튼이 유명해진 후 더 이상 자신의 시에, 음악에 귀기울이지 않는 대중으로 인해 고민하거나,
새로운 작품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는 모습은,,,
가슴이 조금 아팠다.
마지막으로 남창이었던 스튜어트가 예술가의 삶 만큼이나 자신의 삶도 중요하다고,
그들의 전기에 이름조차 없이 스치고 지나갈 자신의 삶도,
그들의  삶 만큼이나 의미 있다고 울부짖을 때에는, 더욱더 가슴이 아팠다.
나도 스튜어트랑 별반 다를 게 없을 테니까.

오든 역을 연기하는 노배우는 오든과 겹쳐보였다.
노 배우는 계속해서 배우에게 불만을 제기한다.
왜 오든의 추찹한 사생활을 들추냐고도 얘기하고,
문학적인 표현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도 몇번이고 연습을 중단시킨다.
그럴 때마다 노련한 무대 감독 케이가 그 상황을 수습한다.
이 뿐만 아니라, 카펜터 역을 맡은 도널드는 자신의 역할에 불만을 갖고,
자신이 그저 장치일 뿐이라며 또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사전 정보만 봤을 때는 노배우와 작가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져 뭔가 폭발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케이의 봉합에 의해 너무나 잘 마무리 된다.
사실, 그 부분이 가장 아쉬운 점이기도 했다.
갈등이 폭발하는 부분을 잘 모르겠다는 것.
그래서 아마 나는 '담담했다'라는 표현을 했나보다.

하지만 그 부분이 참, 울컥했다.
무사히 연극이 마무리 되고, 배우들이 모두들 돌아간 그곳에서
무대감독과 작가가 남아 이야기를 한다.
무대와 관객과 싸우는 게 배우들이기 때문에,
배우들은 시간이 흐를 수록, 나이를 먹을 수록 두려움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그것은 아마 모든 예술가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무대 감독이 말한다, 그 두려운 장소에, 그 낯선 장소에 관객과 배우가 모이게 하므로,
연극은 대단한 거라고. (명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 않지만)

그냥, 그 이야기를 듣는데...
또 다시 '연극'이 얼마나 대단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연극'이 어떤 의미인지...다시 한번 곱씹어봐야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호재 선생님의 연기에 대한 극찬을 많이 들었는데... 역시나 잘 하신다.
그리고 얼굴만 익숙했던 오지혜 배우님의 연기도 좋았고.
사실 누구 하나 앙상블을 해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팀 역을 맡은 김기범 배우는,,,,잘 생겨서 좋았다. (은근, 느끼하게 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사실, 관람 이후 리뷰들을 찾아보았는데
이런 연극 같은 경우 알고 보면 더 좋았을 것들이 많은 듯 하다.
명확하게 뭐가 좋았다, 나빴다, 싫었다라고 평하기는 어렵지만,
대본을 한번 찾아서 곰곰히 읽어보고 싶게 만들고,
극 중에 나온 이들의 실제 삶을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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