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 2011년 6월 5일(일)
공연장 : 명동예술극장





SNS의 승리라고 해야할까.
세미클론의 멘션들 때문에 생전 첨으로 만화책을 사 봤다.
국립극단의 멘션때문에 아놀드 웨스커의 <키친>을 선택했다.
아니, 그것은 거짓말.
국립극장의 멘션이 이 연극을 선택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꼭 그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좋은 후기를 리트윗한 <3월의 눈>은 끝끝내 보지 않았으니까.

이 연극을 선택한 이유에는 너무 웃기지도 않지만 왠지 '국립'이 들어간 것은 다 좋아보이고, 왠지 멋있어보이는, 분명 좋은 작품일 것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편협한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 무수히 많은 멘션 중 하나,

"피터가 꿈이 있다고 말하자 동료가 "형은 나이가 많아"라고 한다. 피터는 "나이가 많지 않다, 사람은 죽어야 나이가 많은 거다"라 답하곤 동료들에게 꿈을 얘기해 보라고 종용한다. -연극 키친 중- "

라는 내용때문이었다.
항상 나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단어 하나.
꿈의 시기를 저렇게 정의한 연극이라면 조금은 특별하지 않을까.

<키친>을 보기 위해 향한 명동예술극장.
처음 이 곳이 리모델링 되었을 때 관심이 많았었다. 당시에는 내 구역(?)이었던 명동에 생기는 전용 극장. 드라마 <명동백작>을 통해서 만나봤던, 전혜린의 글들을 통해 만나왔던 명동이 문화예술의 메카였던 그 시대가 조금이나마 복원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졌던 나 역시 명동예술극장을 단 한 번도 찾지 않았었다. 그러니 명동은 여전히 그저 관광객들의 쇼핑 장소일뿐. 번잡한 인파를 뚫고 명동예술극장으로 들어가며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게 큰 극장은 아닐거라 생각해 R석 중 2열을 선택했는데, 이게 웬걸. 너무 앞이였다. 시선이 무대 바닥이니 조금 관람하기가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역시나 첫 번째 등장인물의 행동이 잘 보이지가 않았다. 흐흙. 하지만 어차피 연극은 시작되었고 배우의 생동감에 집중하자 다짐하고 관람 시작!

연극은 정말 한 식당의 주방의 시작과 함께 막을 연다. 고요로 시작된 주방의 하루는 출근을 하는 직원들의 인사로 시끌벅적해진다. 사람들의 관심은 조리사 가스통과 피터의 싸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이 피터라는 인물이다. 독일인이자 키친의 싸움꾼이자, 홀의 유부녀와 사랑에 빠져 있는...누군가는 그를 미친놈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그렇개 모든 것에 화를 내고 사는 게 피터만의 잘못은 아니지 않냐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화가 나 있지만 그것을 티를 내지 않을 뿐 아니냐며. 피터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는 사람일 뿐 아니냐고.

무수히 많은 등장인물에, 그리고 너무 오랜만에 보는 번안극인 관계로 사실 하나의 이야기를 따라가기도 힘들었고, 처음에는 좀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군상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 그 <키친>은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는, 하나의 줄거리로는 단정할 수 없는 인간 세계의 축소판이 들어있었다.
1막은 점심시간이 되며, 클라이막스로 다다른다. 정말 무대를 보는 관객의 혼조차 쏙 빼놓는 정신없게 만들어 새로운 아일랜드 조리사가 절규했을 때, 그 외침에 동의하도록. 나 역시도 "이제 그만" 이라고 소리지르고 싶었으니까.

인터미션 시간. 뒷좌석에 앉으신 분들의 품평회(?)가 시작되었다. 이 연극을 프리뷰때 보신 듯하고 꽤나 연극을 자주 보시는 듯하며, 이 연극에 나온 배우 중 한 분을 좋아하는 듯 했다. 뭐, 이런 건 중요하지 않고! 그 분들 덕분에 얹은 중요 정보! 이 연극에는 수 많은 민족들이 나온다. 영국인, 유대인, 독일인, 아일랜드 사람까지...그래서 외국어도 막막 남발! 그 대사들이 자막으로 환기구에 나왔다는데...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너무 앞열에 앉았기 때문 만은 아니었다. 조명이 너무 밝아서 자막이 보이지 않았다. 자막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2부부부터는 외국어가 남발될때 꽤나 신경써서 바라보았지만 정말, 안 보였다. 배기구를 스크린으로 쓴 무대활용도는 매우 훌륭하였으나,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 하니 안타까울 따름!

 




인터미션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되면 전쟁같았던 주방의 점심시간이 끝나고 저녁시간까지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밤과 함께 유일한 고요가 허락된 시간. 이 곳에서 주방 집기들로 자신만의 성을 만든 피터가 동료들에게 묻는다. 꿈이 뭐냐고. 라디오를 만들 정도로 솜씨가 좋은 한 동료는 헛간같은 곳에 작업실을 갖는 것. (이 사람에게 왜 그 솜씨를 갖고 주방에서 일을 하냐고 차라리 공장에서 일을 하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 때 이 사람이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어치피 다를 게 없을 거라고. 공장에 가서 부품을 만들 수밖에.) 그리고 독일 애송이는 돈! 기타(?)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며 돈을 노래하고, 아일랜드 신참 조리사는 '잠', 베이커리 부반장은 무조건 '여자'. 그리고 베이커리 반장, 유대인. '친구' 이 분의 대사들이 사람의 가슴을 참 절절하게 만들었다. 벽에 관한 이야기와 이기와 이해에 관한 이야기. 이 길고 긴, 어쩜 일장연설 같은 그 이야기들에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아마도, 내가 외롭고, 내가 누군가의 이해와 위로를 받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독일 애송이거 이 사람에게 빨간 장미 한 송이를 받았듯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빨간 장미 한 송이를 받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진지해진 분위기에서 동료들은 이 이야기를 시작한 피터에게 꿈을 말해보라고 한다. 피터는 끝끝내 꿈을 말하지 못하고 그곳을 나가버린다. 말하지 못하는 꿈?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던 꿈. 아니, 더 이상은 꿀 수 없는 꿈.
연극은 저녁시간, 더 이상 뒷걸음칠 수 없는 등장인물들의 불협화음 속에 자신의 애인이 또 아이를 유산시키기 위해 약을 먹었다는 걸 알게 되고 이성을 상실한 피터는 모든 것을 다 때려부수기 시작한다. 그렇게 파국으로 치닫는 주방.
사장은 그렇게 망가져버린 주방을 바라보며 울부짖는다. 일거리를 주고, 돈도 주는데... 더 이상 뭐가 필요하냐며. 그런 사장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

사람은 밥 만으로, 돈 만으로 사는 곳이 아니니까. 꿈이 거세당해버린 공간. 사랑조차도 이뤄지지 않는 공간. 끔찍한 그 공간은 인생의 축소판.

솔직히 조금은 어려웠다. 하나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꿈, 관계, 사랑 등.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때때로 대사들은 뭐랄까. 너무 교훈조일 때도 있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눈물이 났다. 뭐가 슬픈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눈물이 났다. 연극을 보면서 당황스럽게도, '꿈'이란 단어를 입에 담지 않으리란 생각을 했다. 정말 '꿈'을 이루기까지. 그 전에는 그 어떤 것도 쉽게 말하지 않으리라고. 왜냐면 '꿈'꾸는 게 너무 아파서, 겁장이 처럼. '꿈'이 너무 무거워 보여서.

이 연극은 희곡으로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아주 오래전 식당을 배경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 연극처럼 엄청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진 않지만, 내가 담고 싶은 것도 이런 인간군상이었는데.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갈 길이 참 멀구나.

여러모로, 아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그런 연극이었다. 나름의 웃음 포인트도 있고, 눈물도 나고.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직접 연주를 해 배경음악을 넣는 경우가 있는데 (너무 앞에 앉아 그게 뭔지 잘 안 보인데다 막귀라 잘 모르겠는데 악기인지, 아님 조리 도구인지! 무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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