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썼던 <미녀는 괴로워> 감상평이다.
이렇게 잊혀졌던 글들과 감정을 꺼내어 보는 것도 꽤나 재밌는 일이다.
그때 나는 이 영화를 어떻게 봤고,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미녀는 괴로워>를 말한다


#프롤로그

때는 지난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한 후 영화를 보러가기로 했다. 여자들만 삼삼오오 모인 자리, 한 친구의 제안으로 <미녀는 괴로워>를 선택하게 되었다. 솔직히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으며, 김아중이라는 배우에 대한 신뢰감 역시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제안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먼저 선택했을 영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매체를 접해 봐왔던 <미녀를 괴로워>에 대한 평가가 메인 카피처럼 ‘깔끔하게 잘 빠진 코메디’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고, 타임킬링용으로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반대는 하지 않고, <미녀를 괴로워>를 보게 되었다.

#미녀가 되고 싶다고? 그건 내 이야기잖아.

나도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신이 내린 저주받은 몸매로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한 여성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여성이라면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에 빠져 한 번쯤은 다이어트, 성형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점점 외모가 중시되고 있는 사회 속에서 일반 여성들의 고민을 이 영화는 스크린 속으로 끌어들여 왔다. ‘소재 선택의 탁월함’ <미녀는 괴로워>가 갖는 강점은 이로부터 시작한다. 누구나 이 영화의 광고를 보면, ‘아~ 나도 저 한나 같이 뚱뚱한 모습인데…’ ‘아~ 나도 미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한나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영화관을 찾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영화가 인기를 끌 수 있는 요인은 ‘새로운 배우의 발견’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여성들은 주진모가 클로즈업될 때마다 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그동안 안정된 연기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주진모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다. 또한 김아중이라는 배우는 연기력에 있어서는 아주 훌륭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뛰어난 노래솜씨로 엔터테이너적인 재능과 기량을 마음껏 보여주며 관객을 매료 시켰다.

<미녀는 괴로워>에서 좋았던 점은 욕설과 폭력, 섹스, 그리고 과도한 사랑이야기가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코메디 영화가 억지스럽거나 과장된 장면을 설정하고, 폭력과 섹스, 욕설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거나 관심을 받았던 반면 이 영화는 성형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소소한 웃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아주 미친 듯이 웃기지는 않지만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더더욱 이 영화의 더 좋은 점은 웃음 뒤에 따라오는 눈물의 역할이다. 적절한 사랑이야기에 한 여성의 자아 찾기가 반영되고 거기다 가족애나 우정까지 가미시킨 이야기는 스토리상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정서를 그대로 반영, 눈물까지 선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웃음과 눈물 뒤에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나는 선정할 수가 없다. 이 영화를 보고 웃음도 터트렸고, 수만명의 관객 앞에서 성형고백을 하는 장면에서는 눈물도 흘렸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보고 돌아서서 깊은 감동과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눈물과 감동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굳이 한 장면을 뽑자면 한상준이 (전신 성형을 한) 제니에게 강한나가 노래 부르는 비디오를 보여주며, 제니에게 없는 한나만이 가지고 있던 게 무엇이었는지 찾아보라고 했던 장면이 그나마 가슴에 와 닿았다. 내가 이렇게 인상 깊었던 장면을 기억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영화는 현실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답을 내려주지는 않고 있다.

이 영화는 외모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까. 영화가 꼭 정답을 말해줘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 영화에서는 자신들의 다루고자 하는 소재에 대한 명확한 가치관을 제시하고 있지 않아,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그래서 뭘 말하고 싶었던 건데?’라는 생각을 갖게끔 만든다. 성형을 한 사람도 자신의 본 모습만 잃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성형 자체가 나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사회가 나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명확하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알지 못하겠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미녀는 괴로워>가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그냥 재밌었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나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굳이 시간을 내서까지 꼭 봐야하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웃음과 눈물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감동과 진지한 의미를 성찰하기에는 2% 부족함이 있지 않았나 싶다.

#에필로그

<미녀는 괴로워>는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미녀는 괴로워>는 만화, 소설 등이 영상화 되고 있는 현실, 가벼운 영화를 더 선호하는 여성 관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현실 등을 잘 활용. 더더욱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창의적인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소재의 콘텐츠(소설, 뮤지컬, 연극, 만화 등)를 발굴하고 영화화하는 안목도 길러야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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