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봤을 때는 뭐랄까.
'쫀득쫀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쫀득쫀득한 긴장감, 쫀득쫀득한 비주얼 등.

물론
'괴물은 태어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라는 질문도 좋았고,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나약하고도, 이기적인.
하지만 가장 본성에 가까운 그 감정에 함께 아파하기도 했고,
몸서리가 치도록 겁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울린 적은 없었다.

근데, 6화는
정말.
조염병 때문에 울었다.

디시갤에서 그런 질문을 본 적이 있다.
"당신은 등장 인물 중 누구에게 가장 공감하는가"
누군가는 무열이의 열등감을 이야기했고,
또 누군가는 유령처럼 살아야 했던 재규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 했고,
또 누군가는 영재의 나약함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나는, 솔직히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누구에게 가장 공감하며,
누구에게 가장 아파하는지.

5화를 보면서는,
누구나 그러하듯,
강모의 장애에 대해서 아파했지만,
사실 눈물을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6화의 조염병은,
정말 따라 울게 되었다.

이전에 그런 장면이 나왔었다.
치훈이 영재에게 강모는 생각보다 약하지 않다고 말하는.
영재는 미친미르의 눈을 쳐다보지 조차 못하지만,
강모는 맞서 싸웠다고.
물론 그 후에 엄청나게 맞았다고는 했지만.

그 장면이 보여주듯, 영재는 너무나도 약한 사람이었다.
선생님이 죽은 후,
공포와 불안이 아이들이 뒤덮었을 때.
의심과 불신만이 가득해 누군가라도 의심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순간이었을 때,
매뉴얼맨이자 리더인 무열 마저도 누군가를 마녀 사냥해야 했을 때,
영재가 보여줬던 폭력성.
등장 인물 소개에도 나왓듯이,
영재는 약함을 숨기기 위해, 그렇게 '폭력'이라는 단어로 무장을 해야만 했다.

그랬던 영재가 그 무장을 해제해 버린 6화.
그렇게 들키기 싫었던,
자신의 나약함을 들켜버렸을 때,
그래서 무너질 때,
가슴이 너무나도 아팠다.


요한 : 이 상황이 계속 간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충격, 분노, 무력감. 그 다음은 뭘 거 같아. 배신. 시간이 갈수록 자네의 적은 내가 아니라 옆에 있는 친구가 되는 거지. 뭐,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이일지는 모르겠지만, 생존은 인간의 본능이고 살기 위해 하는 모든 짓은 정당한 거야...좀전에 내가 말한 배신에는 두 가지가 있어. 첫째 한사람이 다섯명을 배신하는 경우, 둘째 다섯명이 한 사람을 배신하는 경우.

# 약하고 약한 영재가 흔들리는 순간. 몇 번이고 외쳤다. 안됀다. 조영재. 이때까지만 해도, 이토록 영재가 아플지 몰랐다.

무열 : 최치훈 죽은 게 우리 잘못인 거 처럼 말하네요.
요한 : 좋아. 최치훈을 죽인 건 나라고 하자. 김진수를 죽인 건 누구지? ... 자네들 역시 사람을 죽였어. 아닌가? 우연이라고. 사소한 실수? 죽은 학생이 지나치게 예민했던 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죽음은 죽음, 살인은 살인! 내가 상황에 밀려 최치훈 군을 죽였던 것처럼 김진수 역시 자네들에게 밀려 스스로를 죽인거야. 아닌가? 그러니까 이 상황에 대해 너무 억울해 하지마. 서로 벌을 받아보자고.

# 요한은 역시나 정신과 의사. 아이들의 가장 약한 부분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건들인다. 그의 말은 가시가 되어 아이들의 심장에 박혀버린다.



영재 : 나는 어디가 잘못된 걸까요? 내 어디가 나쁜 걸까요?
요한 : 자넨 나쁘지 않아. 다만 약할 뿐이지. 자네가 얼마나 약한지 안다면 아무도 자네를 미워할 수 없을텐데.
영재 : 그 편지 내가 보냈어요...나랑 똑같으면서 지들만 깨끗한 척 아무 잘못도 없는 척, 박무열, 유은성, 최치훈 걔네들 모두 다 지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편지를. 보냈어요. 왜요? 안믿겨요?
요한 : 믿어. 안 믿을 이유가 없잖아. 그럼, 자네가 생각하는 가장 죄많은 사람은 누구지?...그 들에 대한 자네의 증오가 사실이라면 충분히 지목할 수 있을거야 누가 제일 죄많은 사람인지..조영재 군. 그 정도는 말할 수 있어야지. 자네 얘기가 진짜라면....한번만더 확인하지, 그러니까 자네가 생각하는 가장 죄많은 사람이...

# 상담은 누구든 말하게 만든다. 진실을. 하지만 조영재는 진실을 들여다봄으로서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향한 진실은 가장 나약한, 그래서 보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거였음으로. 어쩜 요한이 영재에게 해준 말은 최고의 위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위안으로 인해 영재는 조금은 편하게 거짓말을 했겠지만. 영재의 자학에 가득한 질문과 요한의 대답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또한 살고 싶어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해낼 강함이 없어서 이름을 말해버린 후 영재의 숨막힐 듯한 표정이 너무나 아팠다. 더불어 끝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연출에도 박수를. 아마도 이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누구의 입밖으로도 내어지지 않겠지. 영재가 부른 그 이름이 누구인지. 하지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영재가 누구를 말했을지. (내 예상이 맞다면 조금 사랑에 초점이 맞춰지는 듯 하여 흠.흠.흠. + 7화를 보고 난 순간, 예상은 조금 빗겨나갔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미르 : 은혜를 압사로 갚을라고 그래.근데 선생이랑 최치훈은 어디에 있냐? 죽었어? 최치훈이 죽었어? 그 자식이 죽었다고. 죽었단 말이지. 그게 말이돼? 어이. 아저씨. 진짜 최치훈을 죽였어요? 도대체 뭘 잘못 먹은 거에요? 뭘 어떻게 해야 댁같이 될 수 있어요.
요한 : 내가 자네들과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 연쇄살인범이 나오면 왜 그의 어린 시절에 관심을 갖는 지 알아? 이유를 알아야 안심할 수 있거든. 알코올홀릭에 폭력적인 아버지. 성적으로 문란한 어머니.
미르 : 뭐라는 거야.
요한 : 근데 아냐. 그건 사람들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언론에서 과장하고 부풀린 소설 같은 거야.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모두 괴물이 되는 게 아니고, 정상적인 집안에서 태어난 괴물도 아주 많거든. 즉, 우리 모두는 괴물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지. 어때? 자기들 마음속에 있는 괴물이 느껴져? 지금 몇 마리는 깨어나는 중인 거 같은데?

# 이전에 미르가 창밖으로 걷고 있는 최치훈을 보며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진짜 증오는 아무도 모르게 하는 거라고. 지금까지 최치훈을 딱 한 번 밖에 이기지 못한 미르. 미르는 최치훈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울음이 날 듯, 웃고 있는 미르를 보면서. 처음에는 살짝 어이없어 하는 웃음이, 어쩌면 기쁨의 웃음이 아닐까 하는 정말, 아주, 매우 몹쓸 생각에 빠져 있었다.('악'을 믿는 건가...나는.) 하지만 결국 나의 짧고 얕은 의심은 그저 순간의 생각일 뿐이었고, 미르는 안타까워했던 것 같다. 자신이 이기고 싶었던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한 슬픔. 제대로 겨뤄본 적도 없는데...제대로 미워해본 적도 없는데. 그 미르의 마음도 대박이지만, 무엇보다 여기서도 요한의 대사가 장난이 아니다. 아이들의 마음 속에 있는 괴물을 부르는. 그의 말에 편지를 보낸 장본인이 재규가 짓던 표정, 그리고 거짓을 말해버린 영재가 짓는 표정.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미르 : 안 됐다. 박무열. 최치훈한테 영원히 이길 수 없게 됐잖아. 오우. 패배자. 비웃냐? 난 이겼다. 딱 한 번이지만.
무열 : 알아. 최치훈 생의 첫 패배겠지.
미르 : 그리고 유일한 패배. 앞으로 질 일이 없을 테니까. 내 이런 사람이거든.
무열 : 참 대단하다.

# 딱히... 그냥 그 투 컷이 좋아서. 1등을 이길 수 없는 2등들의 대사가 가슴이 아파서.

영재 : 어이, 유은성!
은성 : 왜, 조염병.
영재 : 어젯밤에 박무열이랑 뭐했냐. 단 둘이.
은성 : 영재야. 조영재. 넌 내가 어떻게 해야 나한테서 관심을 끌래. 내가 어떻게 해야하니?
영재 : 망가져. 지금보다 훨씬 더. 나 같이 삐뚤어진 놈이 좋아해도 될만큼 니가 아주 망가졌음 좋겠어. 근데, 그것도 다 틀렸다. 내가 너무 망가져서, 이젠 그럴 수도 없게 됐다. 내가 이름을 말했거든. 내가. 내가 이름을 말했어.
은성 : 무슨 소리야.

# 우리의 염병이 본격적으로 영재가 되는 순간. 영재는 도대체 얼마만큼 은성이를 좋아한 걸까.




요한 : 기다리고 있었어.
영재 : 그럼 금방 끝나겠네요.
요한 : 뭐가 그렇게 슬픈 거지?
영재 : 슬퍼요? 내가?
요한 : 친구들을 배신한 거?
영재 : 아. 배신이라. 믿음에 등돌리는 게 배신이라면 난 배신 같은 거 한 적없어. 날 믿지 않는데 무슨 수로 배신을 해. 안 그래요? 거짓말 한 죄? 도둑질 한 죄. 조금 있다가는 살인죄까지. 온갖 죄에 대해서 난 유죄야. 그래도 배신은 아니야.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결백합니다. 판사님.
요한 : 그런데 왜 날 죽이려고 하지. 자네의 고백을 이야기할까봐.
.
.
.
무열 : 조영재. 총 내려놓고 얘기하자.
영재 : 박무열 너.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무열 : 다 끝났잖아. 왜 그러는 건데.
요한 : 내가 말을 하면 아이들이 자네를 미워할까봐 그게 두려운가. 미움 받는 건 익숙하잖아.
영재 : 맞아. 익숙해. 미움받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할 정도로. 그래서 일부러 미움받을 짓을 하기도 했어. 하지만 남들이 날 미워하는 거하고, 나까지 날 미워하는 거하고는 다르잖아. 그렇게 만들었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미르 : 조영재.
영재 : 왜? 평소 처럼 불러보시지?
미르 : 뭐, 조염병?

# 어쩜 나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장면이 될 것이다. 남들이 날 미워하는 것과 자신이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느냐고 말하던 영재가 날 슬프게 했다. 이 말은 정말 앞으로도 아니, 어쩌면 평생동안 날 슬프게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열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고 소리지르던 부분. 어쩌면 영재는 가장 죄가 큰 사람으로 무열을 지목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유는 은성이겠지. 자신이 좋아한 은성의 연인이었기에. 진실일지 아닐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맞다면 너무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닌지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모와 영재의 은성에 대한 짝사랑을 이렇게 대비가 되게 표현을 했다는 점은 마음에 든다. 그리고 마지막 배신에 대한 부분도. 미워하는 게 익숙하고 미움 받지 않으면 불안해서 오히려 더욱 미움받을 짓을 했다고 말했던 영재이지만 사실을 믿음 대신 사랑을 받고 싶고, 믿음을 간절히 원했던 게 아니었을지. 그 마음이 미칠 듯이 아팠다.

요한 : 난 내가 한 짓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 자부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임질 정도는 되지. 살인이란 말이야 의외로 힘든 작업이거든. 사명감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야. 근데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요한 : (Na) 나는 기도하지 않는다. 아니, 기도할 수가 없다. 무슨 이유를 들어 저 높은 존재에게 나를 구원하라 말할 것인가. 내가 정말로 선하니 나를 구원하라 할 것인가. 내가 더 가엽으니 불쌍히 여기라 할 것인가. 내가 더 특별하니 나를 돌보라 할 것인가. 오늘 죽은 사람을 생각해보라. 그가 선하지 않아서 불행이 찾아온 걸까. 불필요한 생명이기에 암이 자라난 걸까. 그러니 기도는 무의미한 것. 신도 운명도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 여자. 정혜처럼.


+) 6회를 복습하니,
   누군가 디씨갤에 써 놓았던 추측 중 마음을 휙~ 휩쓸고 지나 가는 것이 있는데...
   흠. 모르겠다.
   사실 그 추측이 맞을 것 같긴 한데,
   맞는다면 기분 나쁠 것 같다.
   먼저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괜히 이런 거에 승부욕 느낀다는 뻘글로 마무리
  
+) 그 외 몇 개 기억에 남는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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