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 2011년 01월 08일 (토)
상영관 : 씨네큐브



지난 달, 벗이 보고 싶다고 말하던 영화 였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사실 최근 영화에 좀 관심을 두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다.
게다가 대부분의 상영관이 이 영화를 내린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째째한 로맨스>를 봤다.

지난 주말, 혼자 영화라도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씨네큐브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더니, 이 영화가 있는 것.
벗에게 연락을 해서 아직도 이 영화가 보고 싶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콜'을 외치길래 나도 아무 생각없이 덩달아 '콜'을 외쳤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난 이 영화의 제목이 <톨스토이의 마지막 사랑> 인줄 알았다.

그렇게 사전 정보 없이 본 영화였는데,
좋.았.다.
전기 영화 자체가 좀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왜이렇게 젊은이들의 사랑보다
중년의 사랑에 더 반응하는 것일까.

뭐, 사랑 이야기는 일단 잠시 접어두고.
우선 인상 깊었던 장면이
톨스토이 사상에 심취한 문학 청년 발렌틴 불가코프(제임스 맥어보이)가  
톨스토이의 수제자,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폴 지아매티)에 의해 톨스토이의 개인 비서로 고용되어,
톨스토이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톨스토이가 발렌틴에게 묻는다.
자네의 에세이를 읽어보았다고.
그러자 발렌틴은 너무나 감동하여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의 의미.
동경하던 사람과 함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기쁨.
그 사람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일적으로 한 곳을 바라볼 수 있다는 그 영광.
내 머릿 속에서 한 사람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내게도.
내게도.
라는 세 글자가 맴돌았다.

그리고, 톨스토이와 그의 아내 소피아.
톨스토이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작품의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하겠고 하지만,
소피아는 가족보다도 신념을 선택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두 사람을 언론은 심각한 불화가 있는 듯 포장하지만,
실상 두 사람은 그러한 대립 외에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다.
신경질적인 아내와 무뚝뚝한 남편으로만 보이던 두 사람.
식사 시간에도 생각의 대립으로 말다툼을 한다.
그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주치의는 선물로 가지고 온 축음기를 튼다.
그 축음기에서는 녹음이 된 톨스토이의 목소리가 흐른다.
점차 기계화가 되는 게 싫었던 톨스토이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그 때 그의 아내가 녹음된 목소리를 음악으로 바꾼 후 톨스토이를 꼭 안아준다.

그 모습이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부부만이 알수 있는
위로법인 것만 같아서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요란스러운 아내는,
남편인 톨스토이가 신념에 빠지기 전, 소설을 쓰는 것에 몰두 했을 때,
그의 글씨를 자신 외에는 아무도 알아볼 수 없어,
자신이 필사해주면서 의견을 나누었던 그 기억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게 톨스토이의 작품은 그녀에게
남편과 함께 해온 사랑의 증표였으며,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그 작품은 남편만의 것도 아니었고,
당연히 사회의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히
톨스토이가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자신을 버리는 것 처럼 느껴졌으리라.

톨스토이를 너무나 사랑했던,
그래서 그 사람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그녀가
안쓰럽고 또 안쓰러워서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신념과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던 톨스토이는
결국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결국 아내는 광기에 가까운 발작을 일으킨다.

사실 서로에게 화가 나고, 싸웠을 때도,
그들은 화해를 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사랑했으니까.
30년이 넘는 시간은 공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니까.

하지만, 마지막!
결국 톨스토이는 그녀의 곁을 떠난다.
아니, 결국은 떠나지 못한다.

사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지 알 수는 없지만
꽤나 가슴이 먹먹했다.

여러가지가 생각났다.
선구자(혹은 선지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남편이 혹은 가족이 선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한다는 거.
그녀가 저작권을 주장하는 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톨스토이가 선지자였기에,
상대적으로 그녀는 속물적인 인간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었다.
(일전에 봤던 안중근 의사의 아들 이야기를 다룬 <나는 너다>가 생각났다)

그리고 한 사람을 향한 너무나 강렬한 사랑은,
사랑받는 사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거.
톨스토이가 아내에 지쳐갔던 것 처럼.
톨스토이가 자신을 떠났을 때,
살아갈 수 없었던 것 처럼.

또한 신념과 사랑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이건 아무도 정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신념보다 사랑이 하찮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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