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인상 깊었던 연극.
앞으로도 오랜 시간, 기억할 연극.



- 2006.11.05 18:41에 작성한 글




20060809
 
[그녀의 방]

뭐라고 말하기 힘든 연극이었다.
'정말 좋았다'라고 말하기에는
'배우'가 겪어야 하는 고통과 아픔, 프로의식이
더 눈에 먼저 들어온 연극이어서_
그리고 그 연극배우에게는
'최악의 연극'이었을테니까.
 
첫 장면에서 가위질을 하는 게 있었는데
그때 손을 베인 모양이다.
눈 앞에 배우가 섰을 때
오른 손을 붉게 물들인 피.
그리고 바닥에 떨어지는 핏물.
얼마나 아팠을 지, 그리고 얼마나 아플지.
피범벅이가 된 얼굴과 옷들을 보면서,
지금이라도 연극을 멈춰야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들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처럼
Show must go on!
쇼는 계속되어야 하고 연극도 계속되어야한다.
 
정말 아픔을 참고 열연한 배우에게 박수를 보낸다.
상처말고도 무대에서 발이 빠진 것등
배우게는 다시 없을 최악의 날이었겠지만
그래서 보는 내게는
더 아름다웠던 날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연극에 대해서 말하자면,
극장에 들어가서 그녀의 방을 찾아가는 길은
좁고 푹신푹신 했으며,
때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흙같은 어둥이라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했다.
 
그렇게 재미있게, 때론 두렵게 찾아간
그녀의 방에서 관객인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빙글 빙글 돌아가는 회전의자 였다.
처음에는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가
크고 검은 사장님 의자가 눈에 보이길래 바꿔 앉았다.
공연을 보면서 이렇게 편안한 의자는
처음이었다.
 
미술관의  전체를 무대로 사용,
관객이 앉아있는 곳마저도 무대가 됐다.
처음에는 가장 왼쪽 방에서 목을 매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다음 방에서 죽은 할머니,
떠나버리는 엄마.
"괜찮다고, 외롭지않다고"
말하는 그녀가 있다.
외로움이 사무칠 때는 소화조차 되지 않는다.
(만성 소화불량인줄 알았으나,
극의 끝에 변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TV틀 속의 무대에서 그녀가
홈쇼핑을 한다. 추석이다.
그녀는 혼자이다.
미니홈페이지는 가상의 세계에서의 즐거움을 말해준다.
현실의 그녀는 너무 쓸쓸하고 외롭지만,
미니 홈피 속의 그녀는 바다에서 헤엄치며 신나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미니홈피가 점검 중이 되면 그녀는 또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녀는 나이다.
그녀는 내가 아니다.
그녀 조차 TV속에 보여지는 타인일 뿐이다.
그렇기에 나인 그녀는 내가 아니다.

항상 밝아보이는 그녀는 실상 짜증도 많고,
외로움도 많은 현대인일 뿐이다.
사랑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그녀.
 
그러니까 기대하지 않잖아.
그러면 상처따위도 없으니까.
처음부터 외로움이, 고독이 다가올 수 없도록
마음속에 사랑의 자리를 치워버려.
그렇게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토마토 주스는 정말...
뭔가 풀리지 않는 날
죽어라 힘을 줘도 열리지 않는 뚜껑.
그러다 갑자기 열려 사방에 튀어버리는 내용물.
심하게 동감했다.
그리고 그 풍선인형(뭐라고 하지? 주유소 풍선인형)
심하게 웃겼다.
그런 위트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외로움과 고독은 노란색 긴 목도리를 만들었다.
줄 사람을 찾지 못해 그렇게
길어진 건 아닐까.
 
그리고 아예 무대 뒷편으로 와서 생일 축하 노래를 흥얼 거리며
예전에 친구, 엄마, 연인이 줬던 편지를 읽는 그녀.
그 많은 사람들은 왜 지금 그녀의 곁을 떠난 것일까.
마지막 무대 양쪽의 방에서 똑같은 두명의 그녀가
동시에 노란 목도리에 목을 맨다.
그러나 한명은 살고 ,한명은 죽는다.
 
결말을 선택할 수 있는 연극.
난 과연 어느쪽일까.
 
연극을 보는 내내 그녀의 방을 훔쳐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와 나를
동일하게 여기려는 순간 타인의 이야기로 느껴지게 하는_
그녀는 자신 주변 사람들이 점점 타인처럼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단 한번이라도
그녀를 안쓰럽게 여겼다면
살아남은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을 것이고,
 
영원히 그녀가 타인이었을 뿐이라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한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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