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크로스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 기억 속에서 나의 아버지는 단 한번도 산타크로스가 된 적이 없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트리를 만든 적도 없고, 케이크를 사 본적도 없고, 선물을 받은 적은...
한 번 있기는 하나, 어린이의 꿈과 판타지를 자극하는 머리 맡 위 양말 속에 있는 선물이 아닌 지극히 현실에 입각한 과정을 거쳐 내 앞에 놓여진 '책'이었다.
그런 아버지 때문이었을까.
나 역시 산타크로스를 믿는 순수함을 유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단 한번도 산타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 온 듯하다.

원래 아이들이란 어른이 만들어 주는 세상에서 살고, 부모님에 의해 사고가 형성되는 존재이니까.
우리 아버지의 세상 속엔 크리스마스는 존재하지 않았고, 아버지에 의해 존재를 부정 당한 산타는 내게도 그저 존재감이 미약한 가공의 인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된 지금도, 내게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세상 사람들의 설렘과 흥분이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무감각해지고, 무덤덤해지기에는 나는 오히려 아버지의 세상이 아닌, 세상 사람들의 세계에 살게 된 것이다.
아버지처럼 완전하게 12월, 이 빨간 날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내게 조금은 쓸쓸할 것만 같았다.
별거 아니라고 여겼던 그 날의 외로움은 다른 평범한 날과의 외로움과는 달리 날 상처 입힐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디론가 향했고, 내가 도착한 곳에는 아버지의 세계가 있었다.

아버지의 세계에서는 산과 들이 하얀 눈이 뒤덮고 있었고, 세 마리의 고라니가 그 곳을 뛰놀고 있었다. 매가 새를 사냥하기 위해 낮게 날고 있고, 작은 새들은 그런 매를 피해 몸을 숨기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휘양찬란한 불빛이 뒤덮힌 도심 속 세계에 살던 나는 그렇게 아버지의 세계 속에 며칠을 머문다.

크리스마스가 상실된 세계.
하지만 외롭지 않은 따뜻한 세계.
그런 나의 아버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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