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 2010년 10월 7일
공연장 : 남산예술센터



아는 동생으로부터 온 문자 한통! <긴급초대! 오늘 8시 남산예술센터 연극 ‘내 심장을 쏴라’. 보실분 롸잇나우 문자>. 보고 싶던 연극이었다. 동명 책을 원작으로 하는데, 책 역시도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놓쳐버렸었다. 정신병원을 탈출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라는 단순한 줄거리만 알고 공연을 보러 갔다.

우선 친구를 만나 공연장으로 갔는데, 극장에 얽힌 옛 기억이 새록새록! 아마도 그 남산예술센터에서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으로 장진 감독님을 뵈었었다. 장진 감독님이 <세일즈 맨의 죽음>이란 작품으로 서울예전 동문들과 함께 공연을 한 것이었는데, 공연 마지막 날 급하게 현장 티켓을 구해서 봤었다. 티켓을 사려고 현장에서 줄을 서 있었는데 장진 감독님이 옆으로 지나가셨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이지만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었다. 하긴 16살 때부터 좋아하던 감독님이었으니... 하지만 티켓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선 상태였기 때문에 따라 갈수도 없었고, 따라가서도 별로 할말도 없고. 그곳에 멍하니. 하지만 공연이 모두 끝나고 난 후, 로비에서 잠시 감독님을 뵐 수 있었고, 사인도 받고 쪽지도 드리고. 조금은 잊고 있었는데. 장진 감독님도, 예전의 나도. 남산예술센터를 보며 그 순간이 조금은 그리워졌다.

티켓을 받고 리플렛을 하나 집어들고 친구 H양과 커피 한 잔을 하러 갔다. 그리고 리플렛을 살펴보니 이게 웬일? 남자 주인공이 김영민 님이신 것이다! 솔직히 좋아한다고 말하기에 심하게 문제가 있는 배우지만, 내게 있어 특별한 배우 김영민 님. 김영민 님의 공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2004년인가, 한참 장영남 배우님께 빠져있을 때 영민 님과 <햄릿>이라는 작품을 했었다. 그 때 <햄릿>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민 님께 빠졌던 것 같다. 하지만 불행히도 가난한 대학생 신분으로 <햄릿>을 보지 못하고 넘어갔고, 영민 님은 아련한 그리움이 된 정도? 아하하. 그리고 또 보고 싶었던 또 하나의 작품. <레인맨>. 영민 님이 또 그 배역을 맡았다는 걸 알고 보고 싶었지만 또 패스. 그 작품은 나중에 다른 배우의 캐스팅으로 보았다는 후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그리워하고 궁금증에만 휩싸여 있던 김영민 배우의 연기를 본다는 것에 이미 나는 조금 흥분 상태가 됐다고 할까? 그렇게 공연이 시작되고. 솔직히 미친놈 역할을 하는 김영민 배우는 충격 플러스 대박! 너무 연기를 잘 하시는 것이다. 젠틀하고
멋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의 미친 연기는 정말 예상 밖이었다.

연극 <내 심장을 쏴라>는 원작을 바탕으로 한 튼튼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와 조화, 그리고 무대 활용과 연출! 이 세 가지가 모두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스토리는 감동과 웃음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국인이 딱 좋아할 만한 가족애도 조금 건들이고 있었으며, 그리고 청춘과 자유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가 있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배우들의 연기였다. 최근 들어 본 연극 중에 가장 많은 배우들이 등장한다.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연기들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대사가 많지 않는 조연들의 연기도 얼마나 훌륭하던지. (물론 한 명, 조금 거슬리는 분이 계시긴 했지만, 그 분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너무 훌륭한 연기였다.) 정말 솔로로 하는 대사가 한마디도 없었던 정신병원의 커플 중 한이를 맡으신 분, 참 잘하시더라. 커플을 잃고 돌덩이가 되어 버린 그 이야기 속 에피소드도 마음에 들었고. 그리고 조연급으로 나온 배우 중 김용 역학을 맡은 정승길 님은 옛날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 들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본 분이었다. 책임간호사 윤보라 역을 맡은 윤다경 님과 함께. 봤던 배우들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까지. 너무 좋았다. 배우들이 정말 연기를 잘 한다고 느낄 때가 정신병원이 난리가 나거나 아니면 흥겹게 어우러져 즐길 때. 정말 개인적인 연기들도 좋았지만 전체적인 앙상블도 너무 훌륭했다. 또다른 남주인공 류승민 역을 맡은 이승주 님도 훤칠한 키와 잘 생긴 얼굴. 게다가 연기도 꽤나 괜찮았다.

드라마는 심각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재밌게 풀어간다. 수명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우울한 청소부와 잠시 말다툼을 할 때, 그걸 어떻게 해결할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우리의 용이님의 한 마디로 정리가 되어버린다. “사제지간에 싸우는 거 아니에요” (수명은 청소부에게 수학을 가르쳐줬다) 유쾌한 대사이지만, 또 그 긴장감이 고조된 분위기를 바꾸려면 배우의 연기가 중요한 대사인데, 너무 잘 해주었다.

무대는 꽤나 단순했다. 하지만 조명과 연출만으로 그 단순한 무대를 가득 채운 점이 또 훌륭했다. 내가 좋아하는 연극적인 재미라는 것이 있다. 바로 상상하게 만드는 것. 연극은 영화와 달리 대사나 연출로 ‘여기가 차안 입니다’라고 말하면 차안이 되고, ‘여기가 보트입니다’라고 말하면 보트가 된다. 조명만으로 차안을 만들고, 연기 만으로 물속을 만들어 낸다. 수명과 승민이 보트를 타고 갈 때, 수명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직접 손으로 날리는 승민. 미치는 줄 알았다. 정말.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장소. 정신병원, 신림책방, 수봉산, 유원지 등. 이런 걸 연극적으로 표현해낸 제작진에게 정말 큰 박수를. 그리고 그 것을 너무 훌륭하게 뒷받침 해준 배우들에게 박수를. 그리고 숨지도 말고, 견디지도 말고, 살자고 하는 주옥같은 이야기들.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어느 정도는 극적인 이야기였지만, 또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현실적일 수 있는 이야기들. 간만에 너무 재밌고 유쾌하고 즐거운 작품을 봤다. 극장을 나가는 발걸음을 너무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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